“SNS 유령친구 구해요”… 왕따 두려워 가짜인맥 맺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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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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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딸을 둔 권모 씨(44·여)는 최근 딸의 스마트폰을 압수해 버렸다. 딸의 ‘카카오스토리’(카카오톡을 통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심상치 않은 내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학교에 다니는 딸의 카카오스토리에는 지방의 남학생 여럿이 친구로 등록돼 있었다. 권 씨가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고 추궁하자 딸은 “그냥 유령친구일 뿐”이라고 답했다. 카카오스토리 친구 수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카카오스토리 ID만 공유한 사이라는 말이었다. 권 씨는 “모르는 사람하고 SNS 친구를 맺다가 큰일 나면 어쩌냐”며 스마트폰을 빼앗아 버렸다.

○ SNS에서 ‘친구 수’를 늘려라

‘유령친구’는 카카오스토리를 사용하는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다. 카카오스토리 ID를 서로 공개하고 친구를 맺지만 댓글을 다는 등 친분 쌓기는 절대 하지 않는 사이를 가리킨다. SNS에서 친구가 없어 보이는 게 싫은 청소년이 주로 이런 방식으로 친구 맺기를 한다. 중학교 교사 구모 씨(26·여)는 “아이들이 내 카카오스토리를 보고는 ‘선생님은 친구가 100명도 안 되느냐’고 놀린 적이 있다”며 “친구가 적으면 ‘왕따’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청소년 온라인 커뮤니티 ‘사춘기소녀나라’에는 “유령친구 구해요”라는 글이 하루에도 10여 개씩 올라온다. 그 글에는 자신의 ID를 공개하며 친구를 맺자는 댓글들이 달린다. 진정한 친구는 별로 없지만 외로움을 감추고 싶은 청소년들의 궁여지책이 확인되는 공간인 셈이다. 청소년들이 이처럼 ‘대외 과시용 친구 맺기’에 골몰하는 것은 ‘친구가 별로 없는 아이’로 낙인찍히면 왕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이윤조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팀장은 “청소년은 ‘거품 인간관계’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구 많은 아이’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턱대고 친구 수를 늘리다가 악플 등으로 상처를 입으면 건강한 인간관계 형성에 큰 두려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발달단계상 청소년은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면서 “유령친구로 친구 수를 늘린 뒤 남들에게 ‘인기인’으로 보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현상은 SNS나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일부 대학가에는 ‘밥터디’가 구성되고 있다. 식사 때만 모여 함께 식사하고 헤어지는 모임이다. ‘스터디’에서 차용해온 표현이다. 서울소재 사립대에서 2011년 구성된 밥먹는 동아리도 이런 밥터디의 일종이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사람끼리 식사하는 이 모임은 페이스북에 ‘밥을 같이 먹자’는 글을 올리면 댓글로 약속을 잡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고시생이나 취업준비생, 군대를 전역하고 친구가 없는 복학생이 주로 관심을 보이는 동아리다.

이런 모습은 ‘나 홀로 식사’가 일반화된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2011년 일본 온라인 매체 ‘제이캐스트’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서 ‘변소밥’을 먹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일부 대학과 고교에서는 화장실 안에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았을 정도다.

일부 성인 중에도 중고교생처럼 ‘SNS 친구 늘리기’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인맥을 늘리려고 별짓을 다 해봤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친구가 너무 적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구 신청부터 해놓고, ‘페이스북 친구 만들기’ 카페에 가입해 서로 ID를 주고받으며 친구를 맺기도 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내 한 페이지에는 ‘친구 추가 부탁합니다’라며 생면부지의 사람과 친구를 맺으려는 사람의 글이 줄을 잇는다.

○ 개인주의 좋지만 외톨이는 되기 싫어

공동체적인 삶을 싫어하고 개인화 성향이 강해지면서 사회가 분자화, 원자화되는 추세인데도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이 혼자 있는 외로운 존재로 보이기 싫어 발버둥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공동체에 귀속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한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처럼 철저한 개인주의가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예전의 공동체 지향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인위적으로 관계 맺기’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이 젊은이들의 독립심 저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지만, 독립심이 약해 혼자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왕따로 취급당하기 싫은 ‘보여주기’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며 “눈치 보지 않고 누구에게든 당당한 개인이 모여야 건강한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곽도영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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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유령친구#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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