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김정은, 두손 내밀고 고개 숙이고… 이희호-현정은에 ‘깍듯’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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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북 조문일행 귀환… “별도 만남-얘기는 없었다”

“살집이 두툼한데 손이 좋더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조문하고 27일 돌아온 김홍업 전 의원(61)은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악수할 때 받은 인상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일행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뒤 버스에 올라타기 직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26일 김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은에게 조의를 표할 때의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김정은과 따로 대화했나.

“사람이 워낙 많아 (조의를 위해) 줄을 서서 지나가야 했다. 선 채로 김정은과 오래 대화할 상황은 아니었다. 지나가며 악수하는(정도)….”

―김정은과 어떤 얘기를 했나.

“그 안(금수산기념궁전)이 웅웅거렸고 소리가 잘 안 들렸다. 김정은이 (우리에게) 일일이 악수하더라. ‘와줘서 감사하다’고 했고 딴 얘기는 안 했다.”

―김정은은 어땠나.

“굉장히 침울해했다. 굉장히 침통해했다.”

이때 김 전 의원 옆에 있던 아들 종대 씨(25)가 끼어들며 말했다. “(김정은이) 다른 조문객과는 악수를 하지 않는데, 우리와만 악수했어요.”

김 전 의원은 “(우리 뒤에) 조문객이 밀려오니 (우리와 다른 조문객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줄서서 가는 것보다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오래 대화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처럼 이 여사와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을 깍듯한 태도로 맞이했다.

27일 방영된 조선중앙TV에는 이 여사가 김정은에게 다가가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자 김정은이 두 손으로 이 여사의 오른손을 감싸 쥐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여사가 김정은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자 김정은이 곧바로 고개를 숙여 귀엣말을 하듯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김정은 주변에 있던 군 장성들은 이 여사에게 거수경례를 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현 회장과 마주했을 때도 두 손으로 현 회장의 손을 감싸 쥐었다.

꼿꼿이 선 채 한 손으로 조문객과 악수하거나 아예 조문객의 인사만 받던 기존 김정은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특히 금수산기념궁전에 들어설 때 북측 안내자는 “북한에서는 상주가 목례만 하고 손을 잡지 않는 게 관례”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이 여사와 현 회장에게 예우를 갖춰 대한 것은 아버지 김 위원장과 인연이 있는 김 전 대통령, 정 전 회장 유족에 대한 예의일 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인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문단 일행은 27일 오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수대의사당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 여사는 김영남에게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이행)되길 빈다. 우리 방북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김영남도 이에 공감했다고 한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이 여사 일행을 맞이한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 원동연 아시아태평양평화위 부위원장 등은 김정은을 ‘대장동지’라고 불렀고, 원 부위원장은 ‘김정은 대장동지께서 6·15(정상회담) 때 오셨던 것과 똑같은 대우로 모시라고 지시했다’며 2000년 6·15 때 백화원초대소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묵으셨던 똑같은 101호에 묵도록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이 여사와 현 회장 일행은 이번 방북이 순수 조문이었기 때문에 김정은이 구체적인 대남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철구 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은 “(조문을 위해) 40∼50분간 기다렸다가 10분 정도 조문했다”며 “김 부위원장이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여사 일행보다 약 30분 먼저 도착한 현 회장은 “김 부위원장과 별도의 면담은 없었다. 애도 표명만 했지 별도의 얘기는 없었고 따로 만나지도 않았다. 대북사업 논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인상과 성품에 대해 “매스컴에서 보던 대로였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북한은 당초 ‘연락선을 보장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조문단 일행에게 남측과의 통신을 제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조문단의 연락이 온 건 26일 오후 8시. 방북 후 12시간이 지나서였다. 현 회장과 동행한 김영현 현대아산 전무는 평양에서 현대아산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그날 일정만 짧게 불러줬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도청 위험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주=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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