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1부]<2>인신매매식 중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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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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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업체 ‘묻지마 중매’… 3쌍 결혼할때 1쌍은 갈라서

한국에서 4년째 지내는 판 속피 씨(28·경기 의정부시). 캄보디아 여성이다. 2007년 2월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결혼을 결정했다. 두 달 뒤 한국에 들어와 말이 통하지 않는 신랑과 신혼을 보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 물수건을 대주고 친정에 전화도 했다.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맞고 거리로 쫓겨난 친구들을 보며 판 씨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19, 20세면 결혼을 하는 캄보디아에서 판 씨는 결혼이 늦은 편. 7세 때부터 어린 동생을 업고 뙤약볕 아래서 담뱃잎을 땄다. 한국행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서 살 수 있다면, 집으로 돈을 보낼 수 있다면….

한국인과 결혼한 동네 언니가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줬다. 결혼중개업자였다. 캄보디아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결혼 중개가 불법이라 다단계 방식으로 몰래 신부를 모집한다. 조심스럽게 번호를 눌렀다.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어요.” 이름과 주소를 물어본 업자는 다음 날 판 씨의 집을 찾아왔다.

고향에서 프놈펜까지 4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안에는 판 씨 같은 캄보디아 여성이 여럿 있었다. 간판도 없는 결혼중개업소 2층의 한 방에서 10명이 잠을 잤다. 다음 날 선을 보는 방으로 5명씩 들어갔다. 남편은 판 씨를 선택했다. 물건처럼 비교당하는 것이 불쾌했지만 보통 2, 3주는 걸리는 맞선기간이 짧았던 건 행운이었다. 도시에서 숙식을 해결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 결혼이 성사되지 않으면 중개료도 물어내야 한다. 남편은 그녀와 결혼하는 대가로 1300만 원을 지불했다.

○ 묻지 마 결혼으로 이혼율 높아져


결혼이주여성 4명 가운데 1명은 판 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온다. 지난해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에게 살해당한 탁티황응옥 씨의 비극은 이런 ‘묻지 마 결혼’이 원인이었다.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 실태조사(2009년)에 따르면 결혼이민자가 배우자를 만난 경로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만남이 25.1%로 가장 많다. 이어 가족 친척의 소개(23.3%), 친구 동료의 소개(23.1%), 본인 스스로(18.2%), 종교기관을 통해서(6.4%) 순이다.

등록된 국제결혼중개업체는 1900곳 정도. 절반 이상이 직원이 한두 명인 영세업체로 추정된다. 이들이 과당경쟁을 벌이다 보니 허위 정보를 제공하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 캄보디아는 한국인과의 맞선 과정이 인신매매와 다름없다는 이유로 자국민의 결혼을 지난해 3월 금지시켰다가 4월에는 혼인신고 전에 인터뷰를 하도록 절차를 강화한 뒤 다시 허용했다.

만남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속성이니 불행한 결말로 이어지기 쉽다. 2009년 기준으로 국제결혼은 3만3300건, 국제이혼은 1만1692건이다. 3쌍이 결혼하는 동안 1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이혼한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의 동거기간은 평균 3.1년이다.

관습과 문화뿐 아니라 나이 차도 부부 갈등을 빚는 주요 원인. 평균연령은 한국 남성(41.6세)이 외국 여성(33.3세)보다 여덟 살 이상 많다. 캄보디아 여성과는 17.5세, 베트남 여성과는 17세 차가 난다. 한국 남성이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 데다 동남아 국가의 조혼 관습과 맞물린 결과다.

결혼이주여성의 학력을 보면 캄보디아는 중학교 이하가 66.4%이다. 베트남은 61.8%, 중국(한족 등)은 36.8%, 중국 조선족은 34.8%였다. 초등학교 이하 학력인 여성의 51%가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남편과 결혼해 부부간 교육수준 격차도 심하다.

○ 국제결혼중개업법 개정됐지만 빈틈 여전해


정부는 국제결혼이 개인적 문제라며 개입하기를 꺼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제도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결혼이라는 개인의 선택이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인신매매식 결혼으로 동남아 국가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늘어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다문화가족의 중장기 전망 및 대책 연구’(보건복지부·2009년)에 따르면 2020년 다문화인구는 35만1000명, 관련 복지비용은 4633억 원으로 예상된다. 다문화가정 한국인 배우자의 기초생활보장 비율은 4.9%로 일반 국민 3.1%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위장결혼이 아닌 경우 인도적 관점에서 배우자에게 거주사증을 발급한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은 배우자에게 안정된 주거와 생활여건을 제공할 능력이 없으면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정부는 뒤늦게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나섰다. 지난해 11월부터 국제결혼중개업체가 혼인경력 건강상태 범죄경력 등 신상정보를 반드시 교환하도록 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여성은 현지에서 8시간 동안 사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국 남성 역시 8월부터 3시간짜리 사전교육을 받아야 비자 발급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빈틈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무등록 결혼중개업체가 난립한 현실에서 개정된 법이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국제결혼중개업체의 자본금 규모를 1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법안도 계류 중이다. 정부는 비영리 중개기관을 설립하기로 했지만 구체적 진척이 없다.

김두년 중원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결혼 당사자 간 혼인 의사가 있는지 ‘결혼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먼저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국제결혼을 이용한 돈벌이를 막기 위해서는 “위장결혼을 조장하는 중개업체와 이주여성을 불법 고용하는 업자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국제결혼이민관을 2월에 처음으로 베트남에 파견했다. 하지만 정부가 불법 행위를 직접 단속하면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국내 중개업체를 단속한다 해도 현지 브로커의 불법 행위를 막지 못하면 모두가 피해를 본다”며 “정부 간의 공조 외 현지 인권단체의 감시 역할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한국남성도 피해 는다 ▼
외국여성 위장결혼 후 가출 많아… 이혼상담 36%가 남자


폭력을 휘두르거나 정신 병력을 속인 한국 남성, 울고 있는 외국 여성. 국제결혼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런 유형을 떠올린다. 진정성 없는 국제결혼의 피해자는 과연 여성뿐일까.

국제결혼이 흔치 않을 때는 외국 여성의 인권 침해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 남성의 피해도 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의 이혼 상담 건수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7.2%에서 2009년 36.1%로 늘었다. 상담 남성 중 41.4%가 이혼 상담 사유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꼽았다. 중대한 사유로는 생활 방식의 차이(33.7%)가 가장 많았다. 18.4%는 결혼 의도를 속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돈이나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뒤 가출하거나 이혼을 요구하는 식이다.

외국 여성은 결혼 후 2년이 지나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지만 폭력행사 등 남편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면 이혼을 해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다. 이주여성센터 상담사 A 씨는 “진단서를 받아 오면 이혼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여성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안재성 씨(50)는 3년 전 결혼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성(22)과 별거 중이다. 결혼식을 치른 뒤 안 씨는 중개업체와 아내 모두에게 속았음을 알았다. 신부는 나이도 학력도 달랐다. 한국에 온 뒤에는 밤마다 컴퓨터 채팅과 국제전화로 본국 남자들과 연락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자해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몇 달씩 지내던 아내는 어느 날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다. 친자녀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안 씨는 매달 100달러를 우즈베키스탄의 아내와 아들에게 보내고 있다.

남성의 피해가 늘어나는 이유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국제결혼을 돈벌이로 여기고 달려드는 업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지 불법 브로커는 위장결혼으로 돈을 한 번 챙긴 뒤, 여성이 한국에 입국하면 계속 연락해서 이혼을 부추기고 다시 결혼시켜 돈을 또 받는다. 유흥업소에 불법 취업을 알선하기도 한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은 영리 목적의 결혼중개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므로 한국 남성이 피해를 당해도 현지 법률에 호소할 수 없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위원은 “남성이 어렵게 중개비용을 마련했다가 날리는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결혼을 성사시킨 후 자취를 감추거나 이름을 바꾸는 업체가 많아 규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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