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보다 파김치… 그래도 천직”

  • 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정지원 캐스터가 지난 시즌 농구 중계 중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지원 캐스터가 지난 시즌 농구 중계 중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야구장 미리 가 전력 분석… 4시간 중계… 밤 11시 넘어 귀가… 지방 출장…

스포츠 전문 캐스터 1호 정지원 씨의 야구장 24시

#오후 3시가 넘어 야구장에 간다. 경기 시작까지 한참 남았지만 준비할 게 많다. 감독 얘기를 들어야 하고 전날 경기도 분석해야 한다. 경기 시작. 집중해야 한다. 잠깐 한눈팔면 타구를 놓친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경기 도중 교체는 없다. 4시간 가까운 혈전. 드디어 경기가 끝났다. 마무리를 하고 나니 오후 11시가 넘었다.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집에 가지만 내일부터는 지방 출장이다.

프로야구 선수들과 비슷한 일정. 하지만 더 바쁘다. 선수들은 공수 교대 때 잠시라도 쉬지만 캐스터는 그럴 수 없다. ‘스포츠 전문 캐스터 1호’로 통하는 CJ미디어 정지원 아나운서실장(42)은 “이제는 경험이 좀 쌓였지만 초반에는 당황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스포츠 케이블 채널 Xports에서 일하고 있는 정 실장은 1995년 한국스포츠TV 공채 1기로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클 조든이 복귀한 미국프로농구와 메이저리그, 농구대잔치 등을 중계하며 경험을 쌓았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iTV에서 메이저리그 박찬호 경기를 중계하며 이름을 알렸다. 메이저리그 중계권이 다른 방송국으로 넘어간 뒤 잠시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부터 Xports에서 일했다.

“프로야구 중계의 경우 후배 한 명이 있지만 제가 메인 캐스터라 한 시즌에 100경기 넘게 맡아요. 프로농구와 다른 이벤트까지 합치면 1년에 250번 정도는 중계석에 앉습니다.”

2일 광주에서 열린 KIA와 삼성의 경기. 1회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그는 4회 초를 마치고 화장실로 향했다. 5회 이후 클리닝 타임이 있지만 그때는 화장실이 더 북적대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은 순식간에 터졌다. 1-1로 맞선 4회말 선두 타자로 나온 KIA 김상현이 3구 만에 역전 홈런을 터뜨린 것. 그날의 하이라이트였지만 TV에서는 캐스터의 열띤 중계 대신 이효봉 해설위원의 차분한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와∼ 하고 함성이 들리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요즘 야구팬들 수준이 높기 때문에 방송 사고는 물론 작은 실수도 바로 알아챕니다.”

휴가를 제외하면 1년 내내 주말이 없다. 밤 시간도 없다. 가족을 챙기기도,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제게는 천직 같아요. 특히 프로야구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부쩍 관심이 커져 더 보람을 느낍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동아일보 이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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