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탤런트 지진희 씨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화보]카메라광(狂) 탤런트 지진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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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다 사진기가 더 좋아
로봇 모형은 아들도 안줘요”

《한 시간도 더 여유를 두고 출발했건만 시곗바늘은 약속한 오후 6시를 살짝 넘겨버리고 말았다. 오르막길을 부리나케 뛰어올라 갔다. 아직은 여리게 익은 녹음이 좁은 길 양쪽을 덮고 있던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의 산책길. 연기자 지진희 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곳에서 5분 늦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자 “괜찮다”는 말 대신 여유롭게 웃어 보인다. 5월의 저녁, 신록 아래서 만난 지 씨에게 받은 첫인상은 ‘여유’와 ‘편안함’이었다.》

○ 사연 있는 ‘카메라광(狂)’

이달 31일까지 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봄꽃 축제장 한쪽에는 지 씨가 직접 찍은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다. 작품의 구도나 초점 등이 단순한 ‘취미’ 수준은 아닌 듯하다. 알고 보니 지 씨는 연기자가 되기 전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

“사실 ‘사진’이라는 결과물보다는 사진기라는 기계를 더 좋아해요. 뭘 가지고 노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금속공예를 전공했단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에 ‘재미’ 이상의 ‘희열’을 느꼈다고. 이후 명지실업전문대에서 편집디자인(출판 매체의 지면을 보기 좋게 디자인하는 것)을 공부하면서 디자인회사에서 일하게 됐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재미있는’ 일이 없나 기웃기웃할 때 지 씨의 가족들이 사진을 권했다. 우연히 데리고 간 사진관에서 지 씨의 눈이 반짝거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 씨는 기꺼이 가족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광고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에 취직했다. 스튜디오 보조 일은 예나 지금이나 박봉이다. 사진 일을 시작한 1997년경 그가 받은 월급은 40만 원. 당시 물가 수준을 감안해도 지나친 듯하다. 그래도 그는 일이 재미있어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멋진 사진작가가 되자.’ 그러자면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카메라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결심했죠. 최고의 사진기와 렌즈를 사겠다고요.”

그 길로 은행을 찾아가 적금을 들었다. 월 40만 원. 적금을 넣고 나니 생활비가 없었다. 스튜디오의 모든 야근을 자청했다. 하루 야근수당은 1만 원. 그가 한 달에 받는 야근수당은 30만 원에 가까웠다. 밥 얻어먹고, 술 얻어 마시고, 출퇴근은 자전거로 했다. 머리 자를 시간도 돈도 없어 머리도 자르지 않았다. 반년을 일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졌다. 야근수당이 사라졌다. 할 수 없이 적금을 월 20만 원으로 줄였다. 목선에서 자라기 시작한 머리끝이 허리춤에 다다르자 500만 원이 모였다. 월급 40만 원을 받는 스튜디오 보조는 첫 카메라 ‘캐논 EOS-1N’을 그렇게 장만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프로 사진가나 사진기자나 만져볼 수 있는 최고급 모델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기로 사진가처럼 찍어 보진 못했어요. 구입한 직후부터 연기를 하게 됐거든요.”

그래도 그는 여전히 사진기를 좋아한다. 더 많은 종류의 사진기를 가지고 싶어 수집을 시작했다. 롤라이, 라이카, 폴라로이드…. 지 씨가 가지고 있는 사진기는 30개가 훌쩍 넘는다. 고장 난 것이 절반가량이지만 상관없단다. 그저 카메라가 좋을 뿐이니까.

○ 내 취미는 ‘모으고 만들고’

뭔가 수집하는 것도 취미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 씨의 눈빛이 다시 반짝인다.

“피겨(모형) 좋아하세요? 저 정말 좋아해요. 집에 로봇 피겨도 30개 정도 있고 클래식 자동차 모형도 30개 정도 있고. 지금도 계속 모으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500개만 생산된 한정판 같은 거.”

어릴 때부터 ‘마징가 Z’와 ‘로봇 태권 V’를 사랑했다. 화려하고 우람한 ‘건담’ 같은 로봇은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고. 피겨만큼은 다섯 살 난 아들에게도 잘 내주지 않을 정도로 아끼는 그다.

“장식장을 만들고 거기에 죽 전시해 놓고 싶은데 우리 아이가 계속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거예요. 처음엔 ‘아들이 졸라도 절대 안 내줘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렇게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방 옷장 안에 다 숨겨 놨어요. 밤에 몰래 꺼내 보고 닦고 다시 넣어 놓고. 하하.”

지 씨는 후에 여유가 되면 꼭 자기 손으로 카메라든 뭐든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고교 때부터 금속공예와 디자인을 전공한 덕에 만드는 재주 하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이라고. 카메라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시중에 파는 카메라 가방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가죽으로 직접 만들어 쓰거나 기존 제품 일부를 뜯어내고 취향에 맞게 주머니나 수납공간을 달아 쓰기도 했단다.

“만드는 걸 좋아하니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금방금방 떠올라요. 그런 쪽으로 아이디어 떠오르는 거 보면 뭔가 만드는 걸 진정 좋아했던 거죠.”

그러면서 얘기해 주는 에피소드가 걸작이다.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홍보물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있었단다. 의뢰인은 빳빳하게 서 있는 잔디 위에 골프공이 놓여져 있는 사진을 요구했다. 좋은 잔디가 있다는 곳은 다 가봤지만 골프공 무게를 버티는 잔디가 없었다. 결국 특명은 지 씨에게 떨어졌다.

“시장에서 부추를 잔뜩 사 왔어요. 끝 부분만 다 잘라서 부추 속에 이쑤시개를 일일이 끼우고 그걸 판에 꽂았죠.” 부추는 감쪽같이 잔디가 됐고 대쪽처럼 꼿꼿하게 골프공의 무게를 견뎌냈다.

○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와인에 눈떠

최근 지 씨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와인과 이탈리아 음식이다. 지 씨는 원래 밀가루 음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단다. 하지만 작년 9월 부인과 함께 보름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와인과 함께 먹는 이탈리아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고.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을 돌며 수많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이탈리아 음식을 맛보고, 눈에 들어오는 들판 하나가 모조리 포도나무로 덮인 풍경에 감명을 받은 지 씨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탈리아 와인 여행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탈리아, 구름 속의 산책’이라는 제목을 단 책에서 지 씨는 “값이 싸고 대중적인 와인이든, 비싸고 고급스러운 와인이든 ‘내’ 혀에 닿았을 때 더 맛있고 감격스러운 와인을 찾는 느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한 잔을 음미하는 지 씨의 얼굴에 또 한 번 미소가 감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지진희 씨는
금속공예 - 디자인 전공
무엇이든 만드는게 취미

영등포공고 금속공예과, 명지실업전문대(현 명지전문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디자인, 광고디자인 등 각종 디자인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 1999년 가수 조성빈 씨의 뮤직비디오 ‘3류 영화처럼’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드라마 ‘대장금’을 비롯한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열연하며 한류 열풍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올해 말 개봉 예정인 영화 ‘낙원’ 촬영을 끝내고 지금은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를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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