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의 인물]‘실세 차관’ 이주호 100일 실험 평가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파워 실감”

사교육비 경감 대책 관철
곽승준과 호흡맞춰 힘 과시

○“몸사린다”

교원평가-교육청 개편 등 정책
관련단체와 갈등 의식 미적

《눈을 품은 듯 흐린 하늘에 바람이 차던 1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대강당은 팽팽한 긴장감과 간간이 흘러나오는 한숨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강당을 메운 교육과학기술부 공무원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수군거렸다. 이들은 걸어서 10분이면 될 거리를 정권 출범 후 1년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그’의 취임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서 77-6번지로 건너온 이주호 전 대통령교육과학문화수석(사진)의 교과부 제1차관 입성 순간이었다.》

수석시절 관료 물갈이 주도

교과부, 4일 인사 주목

어떤 직책이든 ‘VICE’ ‘부(副)’ ‘차(次)’가 붙으면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이주호 차관만큼은 예외다. 지난해 6월 수석에서 물러나는 순간부터 어떤 모습으로 컴백할 것인지 관심의 대상이었다. 결국 돌아왔다. 실세 차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는 수석 시절 교과부 고위 공무원 물갈이에 나서 실국장 상당수를 날려버렸다. 가장 반개혁적인 부처라며 교과부를 질타했다. 노트에 이름이 쓰이면 죽게 된다는 일본 만화이자 영화 ‘데스노트’를 빗댄 ‘이주호 노트’가 회자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취임한 지 100여 일이 지난 지금 교과부 안팎의 평가나 역학 구도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상당히 사라졌다. 사석에서 그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인간성 하면 이주호’로 통하는데 왜 그렇게 나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다”라고 했다. 최근에는 교과부 직원들도 “소문처럼 무서운 분은 아니더라. 의외로 야단도 잘 안 치신다”고 말한다.

실세 차관의 파워를 반기기도 한다. 부쩍 이해찬 장관 시절을 얘기하는 이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콧대가 높다는 경제부처 직원들이 교육부로 찾아와 예산 설명을 하고, 교육부가 추진한 정책이 ‘잘 먹혔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 타 부처와 예산이나 정책을 협의할 때 이 차관이 ‘보이지 않는 손’을 휘둘러 교과부가 힘을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가 취임한 뒤 입학사정관제 확대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전수 공개, 대학수학능력시험 5년 치 성적 공개 등 일대 사건이 이어졌다. 매번 이 차관이 배경으로 지목됐다. 그가 경쟁과 공개라는 교육 정책 밑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원평가제나 지역교육청 개편 등 과거에 강조하던 정책들을 제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교원단체 등 각종 교육 관련 집단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너무 몸을 사린다는 말을 듣는다. 현안에 대한 언급이나 설명도 지나칠 정도로 피한다. 수석 시절처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는 차관으로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사석에서 장관이 되고 싶다는 말도 한다고 한다. 그의 몸조심은 그의 말을 단순히 농담으로만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몸을 낮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의 시선은 여전히 그에게 쏠려 있다.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교육 권력의 역학 구도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학업성취도 공개 방식이나 수능 성적 공개 범위를 놓고 수석실과 부딪쳐도 결국 차관의 의지가 관철됐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가 부인해도 교육 정책의 실권을 잡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최근 잡음을 일으킨 사교육 경감 대책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이 차관의 역할 분담 와중에 결과적으로 장관과 수석실은 소외돼 버렸다. 안병만 장관이 ‘곽 위원장은 자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밝혔지만 결국 곽 위원장이 앞서 띄우고 이 차관이 ‘뒷일’을 처리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두 달간 진행된 조직 개편과 4일 발표를 앞둔 인사에서도 실세 차관의 힘은 드러난다. 그가 수석 시절 분산시켰던 교육 핵심 업무가 모두 1차관 산하로 집중됐다. 초중고교 교육 전반과 입시, 대학구조조정 등이 모두 그의 몫이다. 몸집을 불린 인재정책실은 이 차관의 업무를 뒷받침하는 핵심 조직으로 거듭난다. 인사를 앞두고 장관의 의중보다는 또다시 ‘이주호 노트’가 회자되기도 했다. ‘신토불이’라는 유행어까지 돌 정도였다. (이 차관에게 찍히지 않도록) ‘몸과 땅이 하나가 될 정도로 납작 엎드려 있으라’는 슬픈 유행어다.

조직원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도 불만 대상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교과부 직원이나 외부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것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직원들의 언론 접촉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기자들 사이에서는 ‘참여정부보다 더한 언론 통제’라는 말이 나오고, 교과부 직원들은 ‘함구령’이라는 말을 할 정도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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