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생각의 연결이 미래를 바꾼다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커넥션/제임스 버크 지음·구자현 옮김/452쪽·2만 원·살림

《14세기에 유럽에서 천을 짜는 직기가 발달하면서 리넨(아마로 만든 직물) 생산량이 증가했다.

리넨 사용이 늘자 예상치 못한 분야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종이 제조업이다.

리넨 넝마는 질긴 고급 종이를 만드는 데 좋은 원료였다. 그 무렵 흑사병의 고통에서 벗어난 유럽에선 무역이 활발해졌고, 계약서를 쓸 일이 많아졌다.

리넨으로 만든 종이는 비싼 양피지를 대체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직기의 발달이 종이 제조업의 번창으로 이어진 것처럼 인류사에서 기술의 발명, 발달은 뜻하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가 ‘빠른 덧셈을 하는 기계’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예측을 위한 도구’의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비행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가 발달하자 포병 장교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비행기의 속도를 감안해 어느 시점에, 어디를 향해 포탄을 발사해야 하는지 계산하는 일이었다. 포탄의 무게, 바람의 방향과 속력, 포탄의 궤적 등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1940년대 미국 육군은 포병 장교에게 가능한 모든 상황의 조합을 알려주는 포격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더욱 정교한 컴퓨터를 만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발명과 발견, 아이디어 및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연결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연결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추적하는 형식으로 기술의 역사를 말하고, 신기술의 등장으로 달라진 인류의 생활사까지 포괄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쟁기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쟁기가 만들어진 근원을 기후 변화에서 찾았다. 기원전 1만 년경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높은 초원 지대의 강수량이 줄어들었다. 초원에서 사냥을 주업으로 하던 방랑자들은 물을 찾아 떠난 짐승들을 쫓아 강가로 내려왔고 농경 생활을 시작했다. 손으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짓던 그들은 인구가 늘면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방법을 찾다가 쟁기를 고안해냈다.

저자는 기술의 퇴보도 관련 요인을 통해 설명한다. 13세기 영국에선 1.8m짜리 큰 활이 최고 무기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다. 그러나 마구(馬具)의 발달로 말을 농사에 이용하면서 큰 활은 금세 쇠퇴했다. 말을 이용한 농사는 생산성이 높았고, 말을 타고 멀리까지 갈 수 있어 경작 토지도 증가했다.

쓰고 남을 만큼 곡물이 생산되자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주로 일요일에 하던 활쏘기 훈련은 점점 시들해졌고, 궁수가 부족해지면서 큰 활은 자취를 감췄다.

전화기의 발명 과정은 개별 기술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획기적인 발명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820년 덴마크인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지 모른다고 추론했다. 영국인 마이클 패러데이는 말굽 모양의 코일 안에 자석을 넣어 코일에 전기를 흐르게 했다. 프랑스인 레옹 스코트는 이와 별도로 소리에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막을 움직이는 실험을 했다.

스코틀랜드인 그레이엄 벨은 이 3가지 아이디어를 합친 장치를 고안해 냈다. 소리가 막을 건드리면 막과 연결된 도선(導線) 막대가 움직인다. 막대가 움직이면서 생긴 자기장이 새로운 진동을 만들면 연결된 두 번째 막에서 이 진동이 다시 소리로 재생됐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기술사와 인류사를 넘나들며 세세한 부분까지 서술했다. 그 세세함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저자가 정작 말하려는 요지를 놓치고 단순한 기술사 책으로 읽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가 일어나는 터무니없이 우연적인 방식 때문에 오늘 중에 당신이 하는 어떤 일이 결국에는 세계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동아일보 사회부 임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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