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글 잘쓰는 비결? 솔직하게 수다떨기!

  • 입력 2009년 3월 10일 03시 01분


《“고등학교 2학년 때 개인 홈페이지에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었어요. 교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상상을 가미한 ‘황당한 스토리들’이었는데 300여 명의 동급생이 매일 접속해 읽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죠. 선생님과 학생 몇 명의 실명을 거론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할 뻔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겐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됐어요(웃음).”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본명 이선웅·29·사진)는 대표적인 ‘엔터라이터(연예인과 작가를 각각 뜻하는 Entertainer와 Writer의 합성어)’다.》

베스트셀러 소설 낸 가수 작가 타블로 “난 이렇게 썼다”

사업하는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미국 홍콩 스위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19세 때부터 3년 동안 미국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썼던 10편의 단편을 모아 자신의 첫 소설책인 ‘당신의 조각들’(달)을 펴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책은 넉 달 만에 16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창작문예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타블로는 “자신의 진솔한 생각이 담겨있다면 낙서도 랩도 한편의 시(詩)가 된다”고 말한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쓰면 ‘글쓰기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놀이’처럼 글쓰기를 즐기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

타블로는 도대체 어떻게 글을 즐기는 사람이 됐을까? 4일 오후 그를 인터뷰했다.

○ 셜록 홈스를 흉내 내다

타블로에게 글쓰기는 즐거운 놀이였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작가의 문체와 주인공의 말투를 흉내 내며 모방작품을 쓰곤 했다.

일기도 즐기며 썼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죽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밤 꿨던 꿈이나 로봇들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의 장면을 글로 표현했다. 그에게 일기장은 조물주처럼 세상을 마음대로 만들고 움직일 수 있는 마술공간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창작문예반에서 활동한 그는 공상과학 판타지소설 시 수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 이렇게 쓴 글은 감춰두지 않았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캐나다의 학교를 다녔는데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친구들과 숱하게 싸웠죠. 하지만 그런 친구들도 제가 쓴 판타지 소설엔 열광했어요. 그 때부터 글쓰기라면 자신이 있었어요.”

그에게 글은 장기이자 세상과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窓)이었다.

○ 말 대신 글로 수다 떨어라

“쉬는 시간에 친구와 수다 떨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까 고민하지 않잖아요?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예요. 말처럼. 자꾸만 억지로 꾸미려 하기 때문에 글쓰기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거죠.”

타블로는 문법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글은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라고 믿어서다. 문장에 최대한 형용사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떤 글이든 쓰다보면 어휘력과 표현력이 늘기 마련. 글쓰기를 ‘지옥 같은 경험’으로만 여기는 학생들에게 타블로는 말한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를 원고지 대신 활용해보라고.

“장르는 상관없어요. 좋아하는 글을 쓰세요. 글쓰기 자체를 즐기다 보면 글 쓰는 실력 자체가 길러져요. 그러면 논술처럼 형식이 정해져 있는 글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어요.”

○ 메모는 ‘정신의 준비운동’

타블로는 늘 메모를 한다. 책을 읽을 때나 수업을 들을 때, 그리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쭉 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할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언뜻 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이 메모는 글쓰기를 위한 그만의 ‘준비운동’이다. 그는 치밀한 개요를 세우기보단 이미지와 단어로 구성한 마인드맵을 기초로 글을 쓴다.

“책을 읽을 때도 주인공의 이름이나 역사적 배경 같은 ‘사실’은 메모하지 않아요. 대신 나의 생각이나 느낌, 순간 떠오르는 단어, 이미지를 묘사해 놓죠. 그런 다음 메모한 종이를 훑어보며 필요한 내용들을 뽑아내 작사를 하고 글도 만들어 나가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타블로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사람과 사물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그 이미지를 다시 언어로 풀어내 글을 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이런 과정으로 태어났다.

“문학시간이었는데 선생님한테서 술 냄새가 났어요. 선생님은 왜 이 시간에 술을 마셔야 했을까? 왜 수업에 늦게 들어오셨을까? 궁금했죠. 그 이유를 상상하다보니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 지더군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제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 글쓰기가 재미없다고? 원문을 비틀어봐!

하긴, 그에게도 글쓰기가 끔찍하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타블로는 “글쓰기가 재미없다면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작가 에밀리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고 논문을 제출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책에선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죠. 너무 하기 싫었지만, 이왕 할 일이라면 재미있게 하자고 생각을 바꿨죠. 책 자체에서 재미를 찾기보단 재미있게 논문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발상을 바꿨다. 왜 이 작가들의 책을 읽어선 안 되는지, 왜 그들의 작품이 재미가 없는지를 매섭게 꼬집는 글을 쓰기로 타블로는 작정했다. ‘그들의 작품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자기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선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더 꼼꼼히, 더 철저히 내용을 분석하며 책을 읽게 됐다.

노래가사를 쓸 때도 그는 신화나 성경에 등장하는 비유를 활용하곤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신 ‘제우스’에 맞서다 하늘을 두 어깨로 떠받치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거인 신 ‘아틀라스’, 그의 모습에서 이 시대 아버지들의 고된 자화상을 읽어낸 타블로는 이를 가사로 옮기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과 ‘햄릿’의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는 가사도 있다.

“음악도 문학도 모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창작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세요. 이 세상에 좋은 글은 없어요. 솔직한 글만 있을 뿐이죠.”

:타블로는 누구?:

힙합그룹 ‘에픽하이 (Epik High)’의 리더.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DJ로도 활동 중이다. 3월 말엔 에픽하이의 새 앨범과 멤버들의 글이 수록된 책이 함께 묶여 나올 예정. 책 속엔 멤버들이 예술적 영감을 음악이라는 구체적 예술형태로 현실화시키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꿈꾸고 창조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놀이”라는 멤버들의 메시지는 에픽하이의 홈페이지 ‘mapthesoul.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