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경에 말을 걸다]김구 선생 서거 60주년…비극의 경교장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강북삼성병원 본관 백범-임정요인이 쓰던 집무실 겸 숙소

올해는 백범 김구(본명 김창수·1876∼1949) 선생이 서거(逝去)한 지 꼭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범 선생이 생을 마감한 곳은 지금 서울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 중인 경교장이다.

이 건물은 1945년 11월 23일 국내에 돌아온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했다.

현재는 병원 입구에 자리한 터라 병원 건물과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면 중앙 출입구를 중심으로 활 모양의 아치형 창이 좌우로 배치돼 있어 단아한 인상을 준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건평 876m²(약 260평) 규모다. 1층 좌우 창을 원형으로 돌출시키고 현관 2층에는 6개의 원주(圓柱)를 사용해 5개의 아치형 창문을 냈다. 당시 지붕에서 마룻바닥에 이르는 모든 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지었다고 한다.

원래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금광재벌인 최창학이 1938년 개인별장으로 세웠다가 광복 후 친일행위를 속죄한다는 뜻에서 김구 선생 숙소로 제공했다. 당초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지명인 죽첨정(竹添町)을 본떠 죽첨장(竹添莊)이라 불렸다.

이후 김구 선생이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던 경구교(京口橋)라는 다리 이름을 따 경교장(京橋莊)이라 개명했다.

이곳은 이승만 박사의 이화장(梨花莊), 김규식 박사의 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 서거 후 최창학에게 반환돼 대만 및 베트남 대사관, 국군 진료소 등으로 사용됐다. 1968년 삼성그룹이 인수해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의 일부로 이용해 왔다. 이 건물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9호였다가 근대적 사료로 재평가되면서 2005년 국가 지정문화재(사적 제465호)로 지정됐다. 현재 지하 1층엔 약국이, 1층엔 원무과와 약제팀, 응급환자 보호자 대기실이 들어서 있다. 2층은 수술물품 보관실로 사용되고 있다.

병원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해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80m²)이 원형대로 복원돼 ‘백범기념실’로 운영되고 있다. 집무실에는 김구 선생의 흉상과 안두희가 쏜 총탄 흔적, 안두희 발자국, 임시정부 시절 관련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경교장에 비치된 방명록을 보니 하루에 10여 명이 이곳을 찾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기념실 담당 직원은 “병원에 들렀다가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그나마 백범 김구사업회의 활동 덕에 찾는 이가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3·1절을 맞아 온 겨레가 다 함께 숭배했던 김구 선생의 흔적을 찾아 온 가족이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안현정 씨

건국대 공예학과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미술사학 석사과정과 동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전공) 박사. 현재 서울예술대, 건국대 강사로 재직 중.


■ 찾아가기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 광화문 방향으로 5분 정도 도보. 적십자병원과 4·19혁명기념도서관을 지나 강북삼성병원 주차장 방면으로 좌회전.

■ 안내받기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개방돼 있다. 무료.(강북삼성병원 홍보팀 02-2001-2781) 경교장을 찾았다면, 바로 옆에 있는 4·19혁명기념도서관을 찾아도 좋을 것 같다. 이 도서관은 광복직후 김구 선생과 함께 환국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잠시 머무른 곳이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의 장본인 이기붕의 사저가 있던 자리이다.(4·19혁명기념도서관 02-737-9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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