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장 ‘메뚜기족’만 유리

  • 입력 2008년 11월 25일 02시 59분


신규가입자에게 무료-할인 혜택 집중

기존 가입 月3만500원… 신규 계약 月2만3800원

“가만히 있으면 손해”… 고객 쟁탈전 ‘제로섬 게임’

매달 3만500원을 내고 2년째 한 통신업체의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A 씨는 최근 아파트 단지에 붙은 이 회사의 전단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새로 가입하는 사람들에게는 월 2만3800원만 받는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금 15만 원, 3개월 무료 혜택 등도 제공됐다.

A 씨가 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따지자 회사 측은 장기(長期) 가입자 20% 할인, 카드 자동이체 할인 등을 통해 월 1만9500원으로 요금을 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가만히 있었다면 월 1만1000원을 손해 볼 뻔한 셈이다.

초고속인터넷 업체나 이동통신 업체들이 기존의 장기 가입자에게는 불리하고 가입회사를 자주 바꾸는 일부 ‘메뚜기족(族)’에만 유리한 마케팅을 전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가만히 있으면 바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메뚜기족이 더 늘어나는 통신시장의 고질적인 병폐가 이어지고 있다.

○ 포화시장 속 경쟁 확대가 원인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전체 가입자 규모는 늘지 않고 통신업체 간 가입자 이동만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올해 9월까지 SK텔레콤, KTF, LG텔레콤의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는 508만 명 늘어났지만 가입 회사를 바꾼 가입자는 3배를 넘는 1588만 명이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도 이 기간 122만 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KT,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등 초고속인터넷 업체 사이를 오간 가입자는 약 4.6배인 561만 명이었다.

일부 가입자를 두고 뺏고 빼앗기기만 거듭하다 보니 업체들은 전체 소비자를 대상으로 혜택을 제공하기보다는 메뚜기족을 끌어들이는 데 열중하고 있다.

SK텔레콤과 KTF는 올 3분기(7∼9월) 번호이동 등 신규 가입자를 모집하는 데 각각 3580억 원, 2474억 원의 모집 수수료를 지출했지만 기존 가입자를 유지하는 데는 각각 2000억 원, 1383억 원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메뚜기족에게 훨씬 더 많은 돈을 쓴 것이다.

이동통신 업체의 한 임원은 “전체 가입자를 대상으로 요금 혜택을 주는 마케팅을 벌이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가입자 간 차별에도 불구하고 업체 간 경쟁이 벌어지면 이동이 잦은 10%가량의 일부 소비자에게 혜택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손해 많지만 제도적 보완 어려워

통신업체 간 가입자 이동이 잦다보니 유무선 통신 판매점들이 가입자 명의를 도용해 수수료를 받아가는 불법 행위도 나타나고 있다. 통신업체들은 일부 통신 판매점이 일정 규모의 가입자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수수료를 받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 있다.

매년 200만∼300만 명이 가입 후 1년도 안 돼 이동통신 가입회사를 바꾸는 바람에 폐휴대전화가 한 해에 1200만∼1300만 대 발생하는 등 자원 낭비도 심각하다. 심지어 잠깐 가입했다가 번호이동을 하는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확보한 뒤 이를 중고폰으로 되파는 수법도 등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당국자는 “통신업체들의 마케팅이 가입자 차별과 자원 낭비 등의 역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며 “현금지급 마케팅 등에는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지만 업체들의 마케팅 방식을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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