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대주단 잣대’ 아리송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건설사들은 “일단 버티고 보자”

‘회사채 BBB― 이상’

가입 기준 정하고도

“그 이하도 선정가능”

“기준 바뀔수도 있다”

건설사 도덕적 해이

부실사 낙인 걱정도

■ ‘대주단 협약’ 왜 쳇바퀴도나

건설업계 구조조정의 핵심 채널인 ‘대주단 협약’이 가입 기준의 모호성, 가입일자에 대한 정부 당국의 혼선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관계당국이 “살생부가 아니라 상생부다”, “가입 안 하면 지원도 없다”며 당근과 채찍을 함께 들이대도 건설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른 회사에 앞서 대주단에 가입했다가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고 경영권을 간섭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60여 곳의 건설업체가 구두로는 주채권은행들에 가입 의사를 전해왔지만 20일까지 100대 건설업체 중 협약에 실제로 가입한 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

건설사들이 가입을 주저하는 데는 갈팡질팡한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달 들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 붙으면서 중견 건설업체들의 부도위험이 커짐에 따라 정부 당국과 은행권은 우선 100대 건설사를 상대로 단체로 가입하도록 하고 17일까지 신청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감이 임박해지면서 건설업체들 사이에 ‘가입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하면 끝장’이라는 불안 심리가 확산되자 당국은 “마감시한은 없다”며 발을 뺐다. 시한이 없어지자 건설업체들의 눈치작전은 더 심해졌다.

이런 점 때문에 국토해양부도 19일 “대주단 가입을 안 하면 지원은 없다”고 다시 가입을 압박했지만 실추된 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은 “17일까지 60여 개 업체가 가입하려고 했다”며 “당국이 ‘마감시간이 없다’고 밝힌 뒤 이들도 눈치를 보며 가입을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정부가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내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버티다가 끝까지 아무도 가입 안 하게 되면 협약의 실효성이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유리한 추가 대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입 기준도 분명치 않다. 대주단 협약은 지원 대상을 ‘회사채 등급 BBB― 이상이며 주채권 금융회사가 내부 심사를 거쳐 선정한 건설기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BBB― 이하 기업도 주채권 금융회사 판단 아래 선정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한 시중은행의 심사역은 “여기다 100대 업체 중에도 회사채 발행을 못하는 곳이 많은데 판단 기준으로 회사채 등급만 제시한 건 큰 허점”이라고 지적했다.

협약에 가입 건설업체의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는 ‘비밀유지 조항’이 있지만 건설사들은 여전히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 증시에 상장된 건설회사의 경우 대주단 가입 자체는 비밀이 유지되더라도 대주단에 가입한 후 추가 대출을 받을 때 공시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당국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대주단 가입을 일주일 만에 결정하라고 서두른 것이 실수였다”며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협약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고 자금이 투입됐을 때 간섭의 범위도 확실하게 하며 한 번 내뱉은 말은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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