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두산 김민호 코치의 사부곡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8시 49분


경주고 1학년인 아들은 매일 오전 여섯시에 눈을 떴습니다. 아버지가 아침마다 흔들어 깨웠기 때문입니다. “운동하는 녀석이 해가 뜰 때까지 자면 어떡해! 얼른 일어나!” 눈을 비비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아침운동이라고 해봐야 동네 계단을 달려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전부였는데, 그 땐 그게 그렇게 귀찮더랍니다. 훗날 “그 덕분에 발이 빨라진 것 같다”고 회상하게 될 줄 모르고 말입니다.

7년 후. 아들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합니다. 때마침 한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옵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괜히 프로에 도전하다 상처받지 말고, 아마에서 적당히 하다 은퇴하고 회사 다니는 게 좋겠다.” 하지만 아들은 고집을 부립니다. “대충 잠깐 하다 말 거였으면 그렇게 이를 악물고 야구하진 않았을 거예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들은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봅니다.

그리고 1995년 가을이 옵니다. 두산에 연습생으로 발을 들여놓은 아들은 벌써 3년차 주전 유격수가 됐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당당히 팀의 우승을 이끕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이 MVP랍니다. 잠실구장에 폭죽이 터지던 순간, 환호하는 아들을 향해 누군가 뛰어옵니다. 그는 울고 있습니다. 한달음에 그라운드로 달려내려온 아버지입니다. “아이고, 이 녀석아. 우리 아들 민호야. 잘 했다, 잘 했어. 참말로 잘했다!” 아들과 아버지가 부둥켜안습니다. 3년 전 아버지의 눈물을 외면했던 아들은 이제 비로소 그 눈물을 마주봅니다. 우승의 순간보다 그 때 그 포옹을 더 깊이 마음에 새깁니다.

13년이 흐른 10월13일. 두산 김민호(39) 코치의 아버지 김청일(68) 씨가 눈을 감았습니다. 폐암 판정을 받은 지 1년 만입니다. 불과 3주 전,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김 코치에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괜찮다. 내 걱정 말고 가서 잘 하고 와라.” 장남은 대답합니다. “선수 말고 코치로 우승하는 모습도 꼭 봐주세요, 아버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손을 놓으며 희미하게 웃던 그 얼굴은, 그렇게 마지막이 됐습니다.

4년 전 떠난 어머니의 곁에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는 길. 아들은 내내 가슴을 쳤습니다. “한 달만, 딱 한 달만 더 기다려주셨으면 좋았을텐데….” 김 코치는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봅니다. 가을 하늘은 서러울 만큼 높고 푸르렀습니다.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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