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별로 분류해놓고 명단 모른다니…” 설득력 떨어져

  • 입력 2008년 10월 16일 02시 59분


■ 작년 ‘쌀 직불금 감사 결과’ 석연찮은 비공개

감사원, 98만명 주민등록번호 조사한 뒤 “통계만 냈다” 주장

“盧정부 공무원 대거 연루 알고도 덮을 이유 있었나” 의혹 증폭

감사원이 공무원과 가족 등 약 4만 명이 쌀 직불금을 타간 것으로 드러난 ‘2007년 감사결과 보고서’를 당시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로 처리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작을 하지 않은 수많은 공무원이 직불금을 수령한 것을 감사원이 파악하고서도 고위공무원의 관련 여부를 전혀 조사하지 않은 것은 공무원 비리를 감시하는 감사원의 직무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사하고도 비공개=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감사원이 쌀 직불금 수령실태 감사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노무현 정권 차원에서 은폐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해걸 의원은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직 공무원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감사원이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문제를 덮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국가기밀이나 재판, 수사와 관련된 사안 등 정보공개법에서 제한하고 있는 사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감사결과를 공개해 왔다. 이런 원칙에 따라 대부분 감사결과보고서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개인정보만 가린 채 감사원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있다.

정 의원은 “감사원이 지난해 7월 당시 농림부에 감사결과를 통보해 제도 개선까지 요구하면서 부당 수령 공무원 수 등 개인 정보와 관계없는 감사내용조차 공개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제도 개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불금 문제가 불쑥 불거지면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 제도 개선 때까지 비공개키로 했다고 해명했다. 임차인 비율이 60%가 넘는 상황에서 지주와 농민 사이에 직불금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명단 파악 없었나=감사원은 “세부 명단을 작성하지 않고 직업군별 통계자료만 추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당 수령 혐의가 짙은 공무원에 대해 추가 조사를 실제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무원의 비위 감독을 주 업무로 하는 감사원이 많은 공무원이 연루된 ‘대형 사건’을 가볍게 보고 장기적인 제도 개선에만 치중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감사원은 98만여 명의 직불금 수령자 주민번호와 10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연금 납부자 기록 전부를 비교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었다면 부당하게 직불금을 받은 고위공무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 공무원과 금융계 공기업 전문직 등 경작을 하지 않고 직불금을 수령한 사람을 구체적인 통계 수치로 뽑아놓고도 세부적인 명단을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을 우려해 이를 덮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감사원은 그동안 제도 개선이 뒤따르는 특정 감사를 하면서도 공무원의 비위 사실을 발견하면 그 건을 별도 조사해 징계했다. 사안이 심각할 경우 검찰수사까지 의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감사원은 “쌀 직불금 제도 개선이 감사의 주된 목적이었고 수만 명의 명단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이런 비리를 척결할 의지가 분명했다면 고위공직자에 국한해서 조사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부이사관급 이상인 1∼3급 고위공무원은 약 1500명으로 감사원이 이들의 수령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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