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노른자 땅’ 25% 값 낮춰 급매물로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4분


빌딩-토지 가격하락 신호탄?

충무로 대형빌딩 예상보다 800억 싸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마포 미래에셋생명 사옥, 희망 매각가-매수가 차이 300억 원

GE캐피탈, 강남-분당에 보유한 빌딩 싸게 내놔도 매수자 없어

부동산업계 “실물경기 침체로 자산 디플레 오나” 우려 목소리

서울 강남권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는 가운데 서울의 사무용 빌딩과 토지 가격도 하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사무용 빌딩은 수년간 부동산 가격 하락 추세로부터 안전한 무풍지대였다. 낮은 공실(空室)률로 꾸준히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높은 가격을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부동산 업계에서는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국내 실물경기가 침체되고 자산가격도 함께 폭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무용 빌딩의 수요가 탄탄한 만큼 아파트와 달리 하락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 강남 등 일급지 빌딩은 ‘무풍지대’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은 예상 매수가격보다 약 800억 원이나 낮은 3250억 원에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됐다. 당초 이 빌딩은 3.3m²(1평)당 최대 1800만 원 선까지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400만 원대까지 하락한 것.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이재길 부동산본부장은 “극동빌딩의 입지가 광화문, 종로 일대의 도심권역(CBD)이라고 하기에 모호해 대표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향후 빌딩 가격 하락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미래에셋생명 사옥도 희망 매각가격과 매입가격의 차이가 크게 벌어져 매각이 무산됐다. 미래에셋생명은 매각 대금으로 약 1400억 원대를 원했지만 투자자들이 1100억 원대를 제시하면서 매물을 거둬들였다.

이 밖에 GE캐피탈도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와 서울 강남권 등지에 보유한 빌딩들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내놨지만 매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방경직성(한 번 오르면 떨어지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한 토지 시장에서도 가격 하락세가 감지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당초 3.3m²당 2억 원을 육박하던 서울 중구 명동의 옛 H은행 땅은 최근 1억5000만 원 선에서 암암리에 매수자를 찾고 있다.

독일계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나 잠실권 등의 일급지 사무용 빌딩 가격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외곽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하락할 조짐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 부동산리츠 펀드 청산 시점도 다가와

관련 업계에서는 최근 하락 조짐을 금리 상승 등으로 자금 압박을 겪는 소유주들이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받아줄 매수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2001∼2004년에 생겨난 부동산 리츠펀드의 청산 시점도 다가오면서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4, 5개 이상의 사무용 빌딩 등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서는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금융기관이 투자한 빌딩들이 시장에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권의 대출 동결로 부동산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사실상 중단된 것도 자산 가격의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가 지급보증을 해도 PF 대출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일부 업체들은 짓기 전에 빌딩을 미리 싼 가격으로 매각하거나, 아예 땅을 싸게 넘기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장기 전망은 엇갈려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 연말을 기점으로 사무용 빌딩과 토지 가격의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대출금리가 연 8% 선을 넘어서면 차입을 통한 투자가 사실상 어려워 매수세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김희석 대체투자실장은 “앞으로 상당 기간은 국내 사무용 빌딩의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여 매입 시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아파트에 이어 빌딩이나 토지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게 되면 실물경제 침체와 겹치면서 본격적인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서울 중심부의 사무용 빌딩은 여전히 공실률이 낮고 임대료가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기 조정을 거쳐 반등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시행사의 한 관계자는 “연간 약 99만 m²(30만 평)의 사무용 빌딩 수요가 있는 서울에 내년에 43만 m²(13만 평) 정도밖에 공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출이 힘들어 사업이 지연된다면 몇 년 뒤에는 공급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져 자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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