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상>외동아이 커뮤니티가 뜬다

  • 입력 2008년 4월 16일 03시 01분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홍보하던 때가 있었다. ‘둘 이상 낳으면 대책 없는 부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여파로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05년 1.08로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고, 2007년 1.26으로 다소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주변에는 아이를 둘 이상 두는 가정이 늘고 있다. 아이들 속에서 행복을 찾는 가정의 삶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진단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외로운 외동아이 ‘신나는 어깨동무’

“아이가 혼자라고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하나는 외로우니 둘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보세요. 각각은 외동아이지만 자주 어울리니까 아이가 4명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청원초등학교 교정에서 소지연(38) 황정화(37) 박선영(35) 박소영(37) 씨는 아이들이 교정 분수대 주변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김민서(8) 최홍석(8) 곽경민(8) 군, 안혜진(8) 양의 어머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외동아이다. 2006년 유치원에서 만난 후 올해 같은 초등학교에 취학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주중에 영어공부도 함께 하고 주말에 수영장에 갈 때도 붙어 다닌다. 어머니들도 서로 친해져서 전시회와 공연을 함께 보러 다닌다.

“다른 집 아이들이 마치 우리 아이 같아요. 식성까지 알 정도예요. 아이들끼리 마치 형제자매처럼 친해요.”

○ “커뮤니티에서 고민 나눠요”

외동아이들이 서로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모임인 ‘외동아이 커뮤니티’가 늘고 있다. 최근 외동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총출생아 63만6780명 중 외동아이는 29만9617명(47%)이었으나 2006년에는 총출생아 45만1514명 중 외동아이는 23만3035명(51.6%)으로 4.6%포인트 증가했다.

인터넷에서는 외동아이 부모를 중심으로 자녀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한 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외동아이 함께 키우기(cafe.daum.net/myonlychild)’ ‘외동누리터(cafe.daum.net/dhlehd)’ 등이 활성화된 인터넷 커뮤니티다. 김은수 청원초등학교 교감은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이 조직한 외동아이 커뮤니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모임이 생길까. 한양대 병원 안동현(소아정신과) 교수는 “외동아이는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에 비해 갈등이나 부닥침 없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의존적인 성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외동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육법이 필요하며 그 첫 단추는 바로 ‘또래와 관계를 맺어 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서 홍석 경민 군, 혜진 양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를 배우게 됐다.

홍석 군의 어머니 황정화 씨는 “아파서 누워 있는데 아이가 감기약을 챙겨왔다”면서 “춥지 말라고 엄마에게 양말을 신겨주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동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 때는 이왕이면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 부모들도 서로 만나 육아나 교육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 쉽다. 민서 홍석 경민 군, 혜진 양의 부모들은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이사도 같은 동네로 가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동아이가 또래와 함께 지내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다. 민서 군의 어머니 소지연 씨는 “형제가 없으니까 누구와 싸우는 일이 없었는데 또래와 어울리면서 때론 싸우기도 했다”면서 “외동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보통 6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 “함께 어울리며 사회성 배워요”

저출산 시대에 외동아이 부모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의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재원(13·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군은 11∼13일 또래 친구 16명과 경북 안동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대부분 외동아이였다. 낮에는 도산서원, 봉정사, 병산서원, 하회마을을 돌고 밤에는 한 방에서 잤다. 재원 군은 친구들과 ‘나’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외동딸 임지언(7) 양을 둔 이해경(38·경기 화성시 병점동) 씨는 외동아이인 정승민(7) 군의 어머니 박정아(39) 씨와 의기투합해 지난해 인터넷 커뮤니티 ‘외동아이 행복나들이’를 만들었다. 현재 회원은 120명이 넘는다.

이들은 ‘애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한다’ ‘짜증을 많이 부린다’ 등 외동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고민을 함께 나눈다.

이 씨는 “외동아이를 먼저 키운 회원들이 답을 주면 마치 내가 아이 두 명을 키운 경험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언 양과 승민 군은 또래 친구 20명과 11일 경기 이천시로 농촌체험을 다녀왔다. 승민 군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장난감을 만지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는데 이제는 친구들에게 먼저 장난감을 빌려줄 정도로 친화력이 좋아졌다.

지언 양은 “남동생, 여동생이 생겨서 좋다”고 자랑했다.

“전에는 집에서 혼자 놀았는데 이제는 동생이 많이 생겼으니 제가 잘 돌봐야죠. 동화책도 읽어주고 장난감 놀이를 하다 보면 진짜 내 동생 같아요(웃음).”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외동아이 키우기 10계명

부모가 친구노릇까지 하는건 금물

여러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자녀 교육 노하우’가 생긴다. 특별히 어디서 배우지 않았더라도 자녀를 키우면서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부모는 외동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이런 지혜가 쌓일 틈이 없다. 송동호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장이 추천하는 외동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조언을 소개한다.

①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은 버리자=친형제자매가 없어도 이웃 사촌 형제는 훌륭한 벗이 된다. 아이의 외로움을 덜어주려면 부모가 밝은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② 혼자 놀 수 있게 내버려두자=부모가 함께 놀아준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혼자 놀면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독립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③ 과도한 기대로 부담을 주지 말자=아이가 하나뿐이라서 부모들은 많이 해 주고 많은 것을 원한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부모는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지 ‘해 주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④ 좌절 훈련을 시키자=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밖에 모르거나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로 자라기 쉽다. 때로는 의도적으로라도 좌절을 경험하고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⑤ 아이 중심으로 생활하지 말자=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서 키우다 보면 아이는 경쟁과 타협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⑥ 아이 친구와의 갈등에 대범하자=친구와 싸우고 오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부모가 흥분해선 안 된다. 또래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킨 뒤에는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야 원만한 대인관계를 배울 수 있다.

⑦ 아이의 친구들을 관찰하자=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 아이의 생각도 알 수 있다.

⑧ 앞서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자=‘귀한 내 아이가 친구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은 경쟁 과정에서 성숙하게 된다.

⑨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자=형, 누나 등 가족 내에서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우수한 또래 친구와 비교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⑩ 부모의 위상은 명확히 가르치자=형제자매가 없다고 엄마는 언니나 누나, 아빠는 오빠나 형 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관계 설정은 아이의 버릇만 나쁘게 할 뿐이다. 부모 편에서 요구할 것은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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