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직]오늘 아침 더 새로운 독립선언문

  • 입력 2008년 3월 4일 02시 59분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은 우리 민족에게 독립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 깊은 샘과 같은 생명력과 지혜를 준다. 건국 6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우리는 국가적 경로와 그 장래를 기미독립선언문의 몇 가지 점을 중심으로 새겨보자.

결코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첫째, 기미독립선언문은 민족운동의 패러다임을 혁명에서 개혁으로 전환하는 대결단을 내렸다. 구한말 민족지도자들은 1884년 갑신정변 이래 동학농민운동, 독립협회운동, 신민회운동과 의병운동 등 온갖 정치적 노력들의 실패를 경험했다. 3·1운동은 구한말 혁명적 노력들의 실패를 딛고 등장했다. 그래서 게릴라식 폭력혁명 방식보다는 평화적 대중시위운동의 방식을 택했다.

둘째, 기미독립선언문의 사상적 깊이는 그것이 선택한 개혁과 계몽의 언어인 자기성찰주의에서 비롯됐다. 3·1운동의 민족주의는 계몽적 민족주의가 그 주조이며, 2·8독립선언문과 3·1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은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개혁적 신문화운동의 기수들이면서 열렬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선언문의 언어는 민족독립이라는 혁명적 내용을 개혁과 계몽의 언어로 풀어내 비장하고 자극적이기보다는 희망적이고 성찰적이다. 정치적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찾으려는 자기성찰주의를 강조한다. 오늘날 한국 지도자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다.

셋째, 기미독립선언문은 민족국가를 근대국가이며 공화정으로 인식했다. 개항 후 거의 반세기 만에 국내 지도자들 간에 대승적으로 민족운동의 노선과 전략에 대합의를 이룬 것이다. 근대세계의 기본적 정치 단위는 근대국가(modern state)이며 이런 근대국가들로 구성된 국제사회에 우리가 진입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넷째, 기미독립선언문은 세계사적 보편주의 문명의식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역내 국가들이 계몽주의, 독립주의, 자유주의를 실행할 때, 즉 대내적으로 국민국가적 자강체제를 이루고 대외적으로 상호 호혜적인 열린 민족주의, 인도주의, 평화주의를 추구할 때에 평화와 질서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 제국 건설을 위해 침략적 행위를 보인 것이 이후 지역 내 평화 구축의 장애가 되고 있는 현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기미독립선언문 정신은 2008년 새 정부 출범에도 몇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압도적인 국민적 바람이 선진화라고 동의했기에 유권자들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대내적으로 분열의 어젠다보다는 통합의 어젠다에 대한 관심이 실용적 과제와 목표 달성을 표방하는 후보를 선택하게 했다.

국민 통합해 세계평화 기여해야

대외적으로는 이제 한국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서 열린 민족주의를 통해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더 큰 보편적 가치와 공공이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한국정부의 정책들은 인권문제나 평화문제, 환경문제, 인종문제 등의 다자적 문제에 대해 일관성과 보편성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최근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보여준 이중적 태도를 이제 종결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보다는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적 관점에서 북한 인권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새 정부는 한국의 대내외적 과제들을 보편적 가치와 언어를 통해 풀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만의 과거 방식을 고집하고 자족한다면 우리에게 결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기미독립선언문은 경고하고 있다.

김용직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장 한국근현대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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