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세상 많이 알아야 세상과 통하지요”

  • 입력 2008년 1월 8일 0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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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와의 ‘소통’은 사찰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아닐까요.”

4일 오후 경남 합천의 해인사 승가대학 강의실에서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47·동양철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는 이날 1, 2학년인 ‘학생 스님’ 40여 명을 대상으로 2시간 동안 중국철학의 흐름에 대해 강의를 했다. 최 교수는 매주 금요일이면 대구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해인사 승가대학으로 가 강의한다.

승가대학은 스님으로 출가한 뒤 사찰에서 수행을 하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입학하는 사찰 내 대학. 해인사에는 4년 과정에 1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복잡한 중국철학 중에는 불교를 ‘이단’으로 보는 학파나 사상도 적지 않다.

최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공자와 맹자 등의 유학과 한국의 성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스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출가를 하기 때문인지 관심 분야가 다양한 편”이라며 “불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전통적인 불교와 다른 내용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승가대학은 지난해 1월 인문학 전반에 대한 강좌와 외국어 과목을 개설하는 등 교육과정을 대폭 개편했다.

불교경전 위주의 공부를 넘어 외부 전문가들이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 이 정도라도 승가대학으로서는 상당한 파격이다.

지난해 1학기에는 서울의 인문학 연구단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 ‘인문학의 이해’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과목은 경북대와 교육협정을 맺어 개설했다. 경북대 의대 교수가 학생들과 만나기도 했다.

4일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자마자 중국어 시험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수업은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이어질 정도로 빠듯하다. 한 학기에 23학점을 이수해야 하고, 학점이 2.0(만점 4.3)이 안 되면 ‘학사경고’도 받는다.

교육과정 개편은 승가대학장을 맡고 있는 법진 스님이 주도했다. 이 스님은 서강대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승 교육이 수십 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아 ‘이러다간 사회와 소통이 안 돼 고립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생겼다”며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어떤 언어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부하는 것도 전통적인 경전 해석 못지않게 중요한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학생 스님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현각 스님의 제자인 1학년 준한 스님은 “늘 마시던 차가 아닌 새로운 차를 맛보는 느낌”이라며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 한국불교가 세계 각국에 통할 수 있도록 자신을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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