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일만 집행 안 하면 한국도 사형제도 사실상 폐기”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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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일만 버티면 한국의 사형제도는 사실상 폐지됩니다.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지와 도움을 얻으러 이곳에 왔습니다.”

3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이상혁(72·사진) 변호사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먼 곳까지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변호사는 1일부터 파리 국제대학기숙사촌에서 열린 ‘제3회 사형폐지 세계대회’에 참석했다. 비정부기구(NGO)가 중심이 된 이 대회는 사형 반대 운동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목적.

1989년 직접 설립한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이 변호사는 “한국을 124번 째 사형 폐지국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달라고 참가자들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2004년 12월 여야 국회의원 175명의 이름으로 사형폐지특별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법사위에 계류 중이지만 제17대 국회 임기 내에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이 변호사가 “330일만 버티면 된다”고 얘기한 것은 12월 29일을 염두에 둔 것. 한국에선 1997년 12월 29일 23명이 동시에 사형된 뒤 사형 집행이 한 건도 없었다. 만 10년 동안 사형 집행이 없을 경우 국제앰네스티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한다.

이 변호사는 “일단 그렇게 분류되고 나면 그 뒤로 사형을 집행하기엔 당국으로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사형제가 자동으로 폐기될 확률이 높다”며 “정부 당국이 이런 상황을 원치 않은 나머지 최근 올해 안으로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뜻을 슬쩍 내비쳤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상황이 급박한 만큼 국제적인 결의를 통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번 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주최 측에 제출했다. 또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한국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 변호사는 “참가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30여 년 동안 사형수를 비롯한 재소자 교화에 앞장서 온 주인공. 사형 폐지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5년 17명을 연쇄 살해한 뒤 붙잡힌 김대두의 변호인을 맡으면서부터였다. 국선변호를 맡게 된 이 변호사는 여러 차례 찾아간 끝에 김대두의 입을 여는 데 성공했다. 이름을 거론한 게 계기가 됐다. “대두(大斗)는 ‘큰 인물’이라는 뜻인데 아버지가 그런 이름을 지어줄 땐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지어준 게 아니겠느냐”는 말에 김대두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 김대두는 동료 재소자 교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마지막 처형 순간에 김대두는 자신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를 위해 기도하고 웃는 얼굴로 사형대에 올랐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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