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불패’ 그 오만함, 이제 깨달았습니다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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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조성호(30) 씨는 고등학생이던 1993년 5월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는 일제 워크맨을 사기 위해 2시간 이상 용산전자상가를 헤맸다.

12만 원 하는 제품을 10만 원에 파는 곳을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매장 직원은 이어폰과 충전기는 별도 판매라면서 3만 원을 더 내라고 했다.

조 씨가 “그러면 다른 데 가서 사겠다”고 하자 다른 점원 2, 3명이 달려들어 “물건에 손때 다 묻혀놓고 왜 안 사느냐”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겁에 질린 조 씨는 결국 다른 곳보다 1만 원 더 비싸게 사고 나서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손님들이 넘쳐 나 친절한 태도도 애프터서비스(AS)도 필요 없었던 곳.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물품이 많아 명성이 높았지만 재고품을 신제품으로 속여 팔고 때로는 고객에게 으름장까지 놓았던 ‘전자특구’ 용산전자상가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이곳 상인들은 ‘고객만족 영업’이라는 모토를 내걸며 변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 격감한 손님들… “호황, 아 옛날이여”

일요일인 5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원효로 원효대교 북단 용산전자상가 입구.

컴퓨터와 가전제품 전기재료 조명기구 등의 제품을 시중보다 최고 30% 싸게 팔아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렸던 곳이다.

예전엔 차가 막혀 입구에서 800여 m 떨어진 전자랜드까지 20∼30분 걸렸던 곳이다. 지금은 시속 60km로 1분도 안 돼 전자랜드 앞을 지났다. 오가는 사람도 드물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전자랜드 맞은편 터미널 전자쇼핑.

지하철 1호선 용산역과 연결돼 있어 항상 붐비던 곳이었지만 이곳 역시 한산했다. 일부 점포는 철문이 내려져 있었다. 과거 점포 자리에 쉼터가 마련돼 있는 곳도 있다.

전산 액세서리를 유통하는 위드씨엔에스 이민우(43) 대표는 “예전엔 제품을 5, 6박스씩 갖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요즘은 다 떨어져야만 주문을 할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도로변 점포가 많은 원효전자상가와 조명상가 쪽도 마찬가지.

조립형 PC를 판매하는 J(36) 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추락한 용산전자상가 이미지가 회복될 기미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이젠 재고처리 창구로 전락했지만…

한 대기업 PC 대리점을 운영하는 H(42) 씨는 “이곳이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급속한 정보기술(IT)의 발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발품을 팔며 가격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용산을 찾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온라인장터가 인기를 끌면서 제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대기업 가전회사인 A전자 C 부장은 “제조사로서도 이제는 용산을 특별 대접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과거 용산 상인들은 제조회사의 상전(上典)이었다.

하지만 지금 용산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제조회사들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C 부장은 “용산은 예전엔 최신 기술의 경연장이었으나 지금은 재고 처리 창구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 고객 위주 영업으로 옛 명성 찾는다

상가 내 1만2000개 점포 대표는 지난달 18일 결의대회를 갖고 “2010년까지 10대와 20대가 즐겨 찾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호객행위 근절 △품질보증 및 AS 강화 △환불 반품 실시 △신용카드 결제 방식과 현금영수증 발행 등을 약속했다.

아이파크 전자상가에선 상인들에게 백화점식 친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매장 내에서의 잡담이나 팔짱끼기, 한 고객을 여러 직원이 응대하기 등 무려 36가지의 ‘용산식 고객대응 태도’를 금지했다.

10년째 조립형 PC를 판매해 온 L(26) 씨는 “제품을 판매한 뒤에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만족도를 확인하고 택배비용을 부담하며 제품 AS까지 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은 과거의 영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

현대아이파크몰 최동주 사장은 “이곳 상인들의 몸부림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철저한 고객 위주의 영업 스타일이 상가 곳곳에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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