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없애자는 ‘개인회생제’의 그늘

  • 입력 2006년 6월 20일 03시 01분


코멘트
《지난달 중순 한 독자가 e메일을 보내 왔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개인회생을 신청해 받을 방법이 없다. 나에겐 빌려준 2000만 원이 전 재산이다.” 처음에는 흔한 채무 분쟁이려니 했다. 이틀 뒤 다시 e메일이 왔다. 판사에게 보냈다는 호소문이 첨부돼 있었다. e메일의 주인공은 20여 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50대 여성. 그는 위자료 6000만 원으로 식당을 차렸다가 절반 이상을 날렸다. 사업은 신통찮았고 먹고살 길은 막막해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남은 돈 2000만 원을 빌려줬다. 이자라도 받아 생활에 보태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채권자와 채무자

제보자를 만난 곳은 경북 구미역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작은 면사무소 소재지. 그는 한옥을 대충 개조한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투박한 손, 물 한잔을 건네는 왼손 검지 끝마디가 허전했다. 고기를 써는 절단기에 잘렸다고 했다. 20여 년 동안 공단 노동자들의 작업복 세탁만 한 탓에 식당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살길이 막막했다. 그녀는 한 달에 30만 원이면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채무자가 제시한 월 1.5%의 이자에 돈을 빌려 줬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자가 끊겼다.

며칠 뒤 법원에서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했으니 판결 때까지 채권을 변제받거나 변제를 요구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는 편지가 왔다.

날벼락이었다. 대학을 나온 여동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함께 채무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개인회생제도가 뭔지 모르느냐.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사실 채무자도 어려웠다. 소규모 사설 학원의 미니버스를 운전한다는 채무자는 낡은 체육복 바지에 발가락이 드러나는 슬리퍼 차림이었다.

학원장은 그가 매달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을 포함해 8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밤에는 대리운전도 하지만 매달 30만 원을 가불하는 형편이고 아내도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한다.

○방법은 없다

‘돈을 떼어먹는 사람에게 유리한 법이 있다니….’

자매는 인터넷을 뒤지고 법률사무소에 전화도 했다.

법률사무소에선 “이미 늦었다”고 했다. 판사에게 호소문도 썼지만 법원에서는 “접수했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자매는 청와대 인터넷 신문고에도 하소연했다.

기자가 채권자와 채무자를 모두 만나고 상경하는 길. 기차역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개인회생·파산 무료상담’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수백만 원 때문에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무료상담을 해 준다는 법무사와 변호사들은 사건마다 50만∼150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다.

시중에는 ‘빌린 돈은 갚지 마라’, ‘합법적으로 빚에서 해방되는 법’ 등의 책도 나와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 개인파산 및 회생 신청자를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이 제도의 그늘에 있는 돈 없는 채권자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개인회생제도란:

10억 원 이하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원의 신용불량자 지원제도. 일정 기간(보통 5년) 소득 수준에 따라 빚의 일부를 갚은 뒤 나머지 채무는 면제받는다.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돈을 여러 채권자에게 채무 비율에 따라 갚기 때문에 사실상 빚의 대부분이 면제된다.

신용회복지원제도 비교
개인파산·회생개인워크아웃개별 금융회사
신용회복지원
운영주체법원신용회복위원회각 금융회사
대상채권무제한(사채 포함)2개 이상 금융회사 다중채무1개 금융회사 단독채무
채무범위담보채무 10억 원, 무담보채무 5억 원 이내(개인파산은 무제한)3억 원 이하소액(1000만 원 이하)
장점법적으로 면책되고 사채도 채무조정 대상절차 간편, 저비용절차 간편, 저비용
단점변호사 선임하면 비용 들고 절차가 복잡하며 장기간 소요대상자 자격 까다롭고 사채는 조정 불가능사채는 조정 불가능

채무 불이행자 채무조정 현황 (단위: 명)
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
개인파산329672133538561만23173만8773
신용회복---6만255028만735219만3698
자료: 한국은행, 신용회복위원회, 대법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