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경찰서 궁유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禹範坤·당시 27세) 순경이 만취 상태에서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을 들고 나와 토곡리 등 인근 5개 마을을 돌며 무고한 주민들에게 총을 무차별 난사한 것.
우 순경은 토곡리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을 살해하고 외부와 통신을 두절시킨 뒤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마구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이로 인해 56명이 사망하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희생자 중에는 생후 1주일 된 영아도, 70세 넘은 할머니도 있었다.
우 순경의 만행은 8시간 동안 계속됐다. 마을을 빠져 나간 주민의 신고로 사건을 접수한 의령경찰서는 뒤늦게 우 순경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기동대를 출동시켰지만 그는 자취를 감췄다. 우 순경은 다음날 새벽 인근 평촌리 서모 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서 씨의 부인 등 2명을 죽이고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당시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 순경이 내연의 처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써야 할 총을 경찰이 무고한 주민에게 마구 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초래한 파문은 적지 않았다. 사건 당일 온천에 놀러가 자리를 비운 궁유지서장 등 4명이 구속됐고 내무부 장관이 사임했다.
잊혀질 만하면 터져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런 ‘무차별 살인’ 사건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이어가며 벌어진 경기 화성 연쇄살인사건, 1994년 지존파 및 온보현 사건, 1996년 막가파 사건에 이어 2004년엔 유영철 사건이 세상을 경악케 했다. 최근 드러난 ‘봉천동 자매 살해사건’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 같은 강력범죄가 터질 때마다 등장해 논란이 되는 것이 ‘사형제 존폐론’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반인륜적 범죄자의 인권까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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