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오바마·클린턴·바이든 뭉친 날, 뉴욕 거리엔 ‘팔레스타인 지지’ 함성이 울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9일 2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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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인 캠페인 기금 행사장 앞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팔레스타인에게 자유를” 구호를 되치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28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라디오 시티 뮤직홀 앞. NBC 방송국과 락펠러센터가 위치한 관광과 상업 중심지인 이곳 주변의 5번가 6번가는 경찰이 오후부터 차량 통행을 막아놨다. 뮤직홀 간판에는 조 바이든,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이 적혀 있었다. 전직 대통령 2명이 트럼프를 이기겠다는 일념 하에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행사가 열린 것이다. 삼엄한 경비 속에 미리 신청한 참석자 5000여 명은 초청장을 보여야 경찰이 두 블록 앞에서 길을 열어줬다. 바이든 대통령 캠프 측은 “역사적 기금 행사”라고 평했다.

실제로 이날 행사는 심야 토크쇼 진행자 스티븐 콜버트의 사회로 세 대통령의 대담, 퀸 라티파,리조, 벤 플랫, 신시아 에리보, 레아 미셸 등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며 판을 키웠다. 참석하려면 최소 250달러(34만 원), 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려면 10만 달러(1억3500만 원)를 내야하는 기금 행사였다. 대통령 부인인 질 여사가 500명을 대상으로 행사 뒤에 진행하는 파티에 참석하려면 추가로 더 기부를 해야 했다. 이날 오바마와 클린턴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으로 총 2600만 달러(350억 원) 기록을 세웠다.

28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라디오시티 뮤직홀’ 간판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이름이 올라와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드레스를 차려 입고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축제 같은 분위기와 달리 행사장 밖에는 빗속에도 분노한 시위대 수 백명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바이든 행정부를 규탄하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였다. “얼굴이 알려지기 싫다면 마스크를 빌려주겠다”는 푯말도 보였다.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온 사람도 보였지만 가자지구 휴전을 요구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美 2030세대들이 다수였다.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뉴욕에서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젊은 진보를 뭉치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뉴욕에 거주하는 직장인 파두모 오스만 씨(28)는 “우리 세금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는 전쟁을 지원하면서 정작 내부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며 “뉴욕시만해도 여성에 대한 묻지마 폭행 범죄가 들끓고 있지만 방위군을 전철에 배치하는 흉내만 낼뿐이다. 그들은 서서 휴대전화만 보고 있다. 역시 세금만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만 씨는 직접 호신 용품을 가지고 다닌다며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4년 전에 바이든 대통령을 찍었지만 다음 달 2일 예정된 뉴욕주 민주당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선 백지 투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민주당원을 중심으로 프라이머리 투표용지를 빈 칸으로 두는 ‘리브 잇 블랭크(Leave it blank)’ 운동이 일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28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인 캠페인 기금 행사장 앞에서 경찰과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마주보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옆에 있던 엘리자 마서 씨(31)도 “4년 전 바이든 대통령을 뽑았지만 좌절감만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 이스라엘 정책만 펴고 있고, 가자지구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며 “민주당 지지가 높은 뉴욕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듣게하는 것은 차라리 투표를 안하거나 제 3의 후보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에서 투표를 안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고 묻자 “트럼프가 된다 한들 둘 다 다를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자지구 휴전을 요구하기 위해 나왔다는 손더스 엘부록 씨(35)도 중동 전쟁 뿐 아니라 범죄 문제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부록 씨는 “1980년대에도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하지만 그땐 밤시간 특정 지역을 피하면 됐었다고 한다”며 “지금은 대낮에도, 어디에서도 묻지마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역대 대통령을 멀리서 볼 수 있을까 “신기한 이벤트”라 구경을 나왔다는 30대 남성 휴 씨(34)는“뉴욕은 대부분 민주당 지지하지만 점점 정치에 냉소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많으면 행사장 안에서 각종 쇼를 보겠지만, 행사장 밖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주거비, 범죄 뭐 하나 해결 된 게 없다”며 “뉴욕시장에 대한 불만도 높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민주당 텃밭 뉴욕에 출동해 11월 미 대선에서 결집을 호소했다. 이날 하루동안 바이든 캠프는 약 2600만 달러(350억 원)을 모금했다. 뉴욕=AP뉴시스
가자지구 휴전 요구 시위는 뮤직홀 안에서도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콜버트가 오바마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솔직히 백악관에 살 때가 좋지 않았느냐, 그리운 게 무엇인가”를 묻자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살 던 것보다 스마트했던 우리 팀이 그립다”며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전 대통령을 치켜 세우던 중 고성을 질러 답변을 멈추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바이든만큼 도덕적 명확성이 높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세상 일은 복잡하기 마련”이라며 적극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을 옹호했다.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 뉴욕주 나소카운티 마사페콰에서 범죄자에 희생된 경찰 조너선 딜러 유가족과 만났다. 31세 딜러 경관은 불법주정차 단속 중 차에 타고 있던 마약 강도 전과자의 총격에 숨졌다. 마사페콰=AP뉴시스
한편 이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뉴욕을 찾아 전현직 대통령 4명이 뉴욕에 출격한 셈이 됐다. 그는 맨해튼에서 차로 한시간 떨어진 롱아일랜드 마사페콰에서 불법 주정차 단속 중 마약 강도 전과자의 총격으로 숨진 조너선 딜러 경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총을 쏜) 사람은 21번이나 체포된 불량배였고 동승자도 여러 번 체포됐지만 그들은 (그런 정도의 처벌로는) 배울 줄을 모른다. 존중감이 없기 때문”이라며 “유가족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범죄를) 멈춰야 하고, 법질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최근 뉴욕 내 범죄 우려가 급증하는 가운데 범죄를 대선 이슈로 부각 시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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