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이나 회고록으로 남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글감이 되는 인생의 자료를 잘 모아두어야 합니다.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
긴긴 인생을 글로 옮기는데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페르소나를 제시해 나가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뜻하는 페르소나는 한 사람에게 여러 개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되는 페르소나를 제시한 뒤 이를 중심으로 또 다른 페르소나들을 열거하면서 인생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방식인 셈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최근 펴낸 자서전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콜라주 펴냄)’은 대표적인 사례가 될 듯하다. 김 회장은 원양어선 실습 항해사에서 출발해 그룹 총수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당연히 ‘나는 원양어선 항해사 출신’이라는 핵심 페르소나가 곳곳에 소개된다. 책의 제목도 거기서 나왔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나온 그는 배를 몰고 먼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주특기를 가지고 있다. 항해사라는 정체성은 인생의 고비 고비에 어려움에 부닥칠 때 마다 그를 단단하게 지지해 주었다.
“1969년 사업을 시작할 때 한 선배가 조언을 해줬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라는 얘기였다.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배를 타는 것뿐이었다. 선장 월급이면 그래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거센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는 대목은 책의 인트로에 소개되어 남다른 비장미를 준다.
항해사라는 정체성이 준 위안은 그를 평생 ‘도전하는 사람’으로 발전시켰다. 고기를 잡는 항해사에서 수산회사인 ‘동원산업’을 창업했고 증권사를 인수해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창업주가 되었다. 광학 사업, 섬유 사업, 정보통신사업 등에 진출했다 실패하지만 깨끗이 접었다는 대목도 진솔하게 소개된다. 이 과정에 그는 ‘위험을 찾아 도전하라(Challenge)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변신하라(Change)’는 ‘나만의 C’를 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끊임없이 “나의 우리 회사의 본질적 경쟁력은 무엇인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고민했는데, 그냥 생각만 하지 않았다. 그의 세 번째 페르소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 읽는 사람’이다.
창업하고 경영하면서 고려대 연구 과정,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미국 하버드대 AMP 과정에 진학해 마쳤다. 항해사 시절 고기를 잘 잡기 위해 책을 손에 잡았다가 평생 독서광으로 지낸 그는 ‘독서는 취미라고 하기보다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에 가깝다’라고 말한다. 신문에 난 원양어선 모집 광고를 보고 항해사가 됐고 증권사 매각공고 기사를 보고 금융업에 뛰어든 사연으로 신문 읽기도 강조한다.
김재철 명예회장이 동원그룹 신입사원들과의 간담회 모습. 동원그룹 제공. 이런 그가 아흔이 넘어 ‘책 쓰는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선보였다. 그답게 방식이 특이하다. 서문에서 그는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자서전을 내도록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기왕에도 평생 젊은 직원들과 토론하고 대화를 해왔지만, 이번 작업을 위해 사내 젊은 직원들과 특별한 대화를 나눴다. 젊은이들의 질문과 노 총수의 답이 책의 살이 되었다. 그 과정을 귀동냥 한 언론인이 있었다. 취재원과 기자 사이로 만나 인연을 맺은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이다. 김 편집장은 그 대화를 듣고 기록하고 풀어서 이 책의 ‘정리자’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는 것이다. 이 책이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렇게 말하는 김 회장은 ‘청년 상담사이자 동기부여자’라는 다섯 번째 페르소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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