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집권 헝가리 오르반, 여권 ‘내부 폭로’에 흔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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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법무장관의 남편이었던 머저르
“총리 측근, 검찰에 압력” 파일 공개
시민 수천명 “퇴진하라” 이례적 집회

오르반
2010년부터 14년째 장기 집권 중인 ‘동유럽의 트럼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여권에서 벌어진 정치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다. 최측근 로간 언털 총리실 내각 장관이 검찰 수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부 폭로’를 계기로 장기집권 과정에서 축적된 시민들의 분노가 터지며 “총리 사퇴”를 외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오르반 총리는 집권 내내 반(反)난민, 반이슬람 노선 등 노골적인 극우 성향을 보이며 반대파를 탄압해 논란을 불렀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6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오르반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려 시민 수천 명이 운집했다. 시위대는 밤늦게까지 의회로 행진하며 “오르반 총리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참석자는 횃불을 손에 쥐고 참석했다.

머저르
이번 반정부 시위는 법조인 출신의 외교관이자 여권 내 스타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머저르 페테르(43)가 오르반 정권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며 정계를 뒤흔든 데서 비롯됐다.

이날 머저르는 전 부인이자 오르반 총리의 또 다른 측근인 버르저 유디트 전 법무부 장관과 결혼 상태였던 지난해 1월 나눈 2분짜리 음성 파일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현직 법무부 장관이었던 버르저는 로간 장관이 집권 피데스당 유력 인사의 비리 수사를 두고 검찰에 증거 삭제를 지시한 정황이 있음을 언급했다.

머저르는 이 음성 파일을 검찰에 증거로 제출하며 “오르반 정권의 조직적인 수사 무마, 증거 인멸 정황 등이 담겨 있다. 그들은 법적, 정치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오르반 총리의 리더십을 뒤흔드는 스캔들”이라고 평가했다.

머저르와 버르저 전 장관은 젊고 매력적인 외모를 지녀 정계의 파워 커플로 불렸다. 대중매체에도 종종 등장했지만 지난해 3월 17년간의 결혼 생활을 돌연 끝냈다. 머저르는 이혼 후 본격적으로 반(反)오르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며 지지 기반을 넓혀 왔다. 15일에는 피데스당을 대체할 새로운 보수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이다.

오르반 총리의 반대파나 26일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오르반 정권의 내부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머저르가 장기 집권을 청산하는 데 기여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다만 의회 199석 중 피데스당(116석) 등 여권이 총 135석을 차지하고 있어 오르반 총리의 사퇴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헝가리#오르반#내부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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