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8세 늦깎이 쇼트트랙 에이스…박지원 “후회 없다면 실패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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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3월 4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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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대표팀 박지원. /뉴스1 DB
쇼트트랙 대표팀 박지원. /뉴스1 DB
좋은 기량에도 ‘큰 대회’와 인연을 맺지 못한 탓에 주목받지 못했던 박지원(28·서울시청)이 드디어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자칫 ‘공백기’가 길어질 수도 있었던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 자리는 이제 누가 뭐래도 박지원의 몫이다.

그러나 박지원은 지금의 성공 가도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빛을 보지 못했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다. 그는 “후회 없이 준비했다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신념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지원은 지난달 마무리된 2023-2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 남자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크리스털 글로브’의 초대 수상자가 됐던 박지원은 2시즌 연속 우승으로 포효했다.

특히 올 시즌 우승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 시즌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개된 시즌으로 주요 선수들이 불참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당장 한국 대표팀에서도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활약했던 황대헌(25·강원도청)이 부상으로 쉬어간 시즌이었다.

하지만 박지원의 활약은 2시즌 째 이어졌다. 세계 강자들이 대부분 출전했고, 내부적으로도 황대헌과의 경쟁이 불가피했지만, 박지원은 정상을 지켰다. 이제는 누구도 이견을 내기 어려운 명실상부한 ‘최강자’다.

최근 대한체육회 체육상 시상식에서 만난 박지원은 “2년 연속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면서 “나 자신에게도 고맙고,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이것을 계기로 또 다음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올 시즌 3차 대회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1차 대회 1000m 우승을 하며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이후 좀처럼 금메달을 추가하지 못했다. 대표팀 동료 황대헌, 김건우(스포츠토토)와 경기 도중 엉켜 넘어지는 등 불운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박지원은 홈에서 열린 4차 대회부터 힘을 냈다. 1500m 금메달로 순위를 끌어올린 그는 대회 직후 “축구로 치면 이제 후반 15분쯤 됐다. 역전할 상황이 됐다”며 월드컵 우승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후 5, 6차 레이스에선 금메달을 3개 추가한 그는 결국 간발의 차로 스티브 뒤부아(캐나다)를 제치고 2시즌 연속 우승을 확정했다.

쇼트트랙 박지원이 2월29일 열린 대한체육회 체육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넥스트크리에이티브 제공)
쇼트트랙 박지원이 2월29일 열린 대한체육회 체육상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넥스트크리에이티브 제공)
박지원은 “한국에서 열린 4차 월드컵이 큰 터닝포인트였다”면서 “홈그라운드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분위기를 전환했고 5, 6차 대회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황대헌, 김건우와의 내부 경쟁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였다고 했다.

그는 “스포츠 선수에게 경쟁은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아주 좋은 요소”라면서 “경기에서도, 경기 전 훈련에서도 경쟁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 더 좋은 기록과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쇼트트랙 박지원. /뉴스1 DB
쇼트트랙 박지원. /뉴스1 DB
사실 박지원은 대표팀에 단골로 발탁되던 선수다. 2015-16시즌을 시작으로 올 시즌까지 6시즌이나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2019-20시즌엔 이미 월드컵 종합우승도 차지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다소 주목도가 떨어졌던 것은 올림픽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18 평창 올림픽, 2022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던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하면서 한 번도 꿈의 무대를 밟지 못했다.

완전한 자신의 시대를 열어젖힌 만큼 이제는 ‘올림픽’에 욕심을 낼 법하지만, 박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쇼트트랙 박지원. /뉴스1 DB
쇼트트랙 박지원. /뉴스1 DB
그는 “올림픽은 아직 2년이 남았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세계선수권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세계선수권이 끝나면 또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간 올림픽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올림픽에서의 두 차례 실패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큰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가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그 실패에서 남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경험을 했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 올림픽 경험만큼이나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뉴스1 DB
박지원. /뉴스1 DB
주니어에서 활약하다 성인 무대에서 좌절하고 올림픽에 나가지 못해 고개를 떨구는 수많은 선수에게 박지원은 ‘희망’의 아이콘이다.

박지원은 “후배들이 내 좋은 모습만 잘 보고 훈련했으면 좋겠다”면서 “나이가 들어도 잘 관리하고 열심히 훈련하면 전혀 뒤처질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경기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준비했다면 아쉬움은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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