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화석연료 개발 멈추려면 각국이 러産 석탄 수입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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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폐막 COP28에서 자국 비판 나선 러시아 환경단체 대표 인터뷰
러 수입 절반 화석연료 수출서 나와… 탄소감축 협상 방해 ‘기후악당’ 오명
정부가 화석 의존 경제 구조 바꿔야… 우크라 전쟁 후 유럽은 러産 수입↓
한국, 여전히 수입량 상위권 국가… 재생에너지 확대해 러 의존 줄여야

11일(현지 시간) 러시아 환경단체 ‘에코디펜스’의 대표 블라디미르 슬리뱌크 씨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동아일보 및 환경분야 싱크탱크 기후솔루션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환경분야 싱크탱크 기후솔루션 제공
11일(현지 시간) 러시아 환경단체 ‘에코디펜스’의 대표 블라디미르 슬리뱌크 씨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동아일보 및 환경분야 싱크탱크 기후솔루션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환경분야 싱크탱크 기후솔루션 제공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13일(현지 시간) 폐막했다. 당초 예정된 폐막일을 하루 넘겨서다. 합의문 초안에 담겼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표현에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서구권과 첨예한 대립 끝에 결국 합의문 최종안에는 ‘퇴출’ 대신 ‘전환’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완화된 표현으로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기후변화 국제 협상의 발목을 잡는 ‘기후 악당’이란 비판을 거세게 듣고 있다. 반면 자국 정책에 목숨을 걸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러시아 환경단체도 존재한다. 러시아인 블라디미르 슬리뱌크 씨(50)가 창립한 ‘에코 디펜스(Ecodefense)’는 2013년 자국의 석탄 개발을 처음으로 비판하기 시작한 환경단체다. COP28 합의문 진통이 한창이던 11일 동아일보는 COP28에 참석한 슬리뱌크 씨를 환경 분야 싱크탱크 기후솔루션과 함께 화상회의 줌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COP28에서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out)’ 표현에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

“러시아는 기후 정책과 관련해서는 아마도 세계에서 최악의 정부일 거다. 러시아에서는 기후 대응에 대한 논의를 거의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기후 위기 관련 이슈를 무시하고 화석연료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 전체 예산의 절반가량이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수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COP28에서 봤다시피 화석연료 퇴출에 반대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화석연료 개발을 반대하는 환경운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선 ‘풀뿌리 운동’을 통해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5년 이후 학생 1만 명, 교사 1000명 이상이 에코디펜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2012∼2015년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HSE)에서 환경정책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동안 아시아 지역에 석탄을 대량 공급해온 시베리아 쿠즈바스 등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탄광산업에 반대하면서, 러시아 석탄 개발을 중지해 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위협은 없는지 궁금하다.

“매우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에코디펜스는 ‘해외 지원단체(Foreign Agent)’ 라벨이 붙었다. 우리가 해외 지원을 받아 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러시아에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외국 스파이’ 낙인이다. 러시아에서는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도 있어 대부분 망명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우리 도시나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구가 함께 위험에 처하기 전에 활동해야 한다.”

―사실 산유국 입장에서는 나라 경제를 생각할 때 화석연료 감축이 쉽지 않은 것도 이해는 된다. 국민들도 반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매직(마법) 버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경제를 붕괴시키자는 게 아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꾸면 이에 맞춰 경제 구조도 바뀔 수 있다. 큰 규모로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하면서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면 새로운 일자리도 오히려 석탄 개발보다 훨씬 많이 창출되고 국내총생산(GDP)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화석연료 개발이 공기나 물 등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재생에너지로 바꾸면 공중보건도 크게 개선돼 정부의 보건 관련 지출도, 국민 건강도 개선될 것이다. 정치적 의지가 없다면 경제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현재 기후 대응에 큰 진전을 이룬 다른 나라들도 처음부터 좋은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독일은 25년 전 재생에너지 발전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거의 절반으로 끌어올렸고 2030년까지 석탄을 퇴출하겠다고 말하지 않나.”

―에코디펜스 분석 결과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한국이 러시아 석탄 수입국 2위를 차지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 유럽, 호주 등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는 러시아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 수출이 막히면서 가격이 거의 절반 가까이 저렴해졌다. 그런데 이때 대한민국이 러시아 석탄 수입을 늘렸다는 데 매우 놀랐다. 중국, 인도, 터키 등의 나라와 상위권인 것이다. 전쟁 자금이 절박하게 필요해 석탄 가격을 낮춘 러시아 정부에는 단비와 같았을 것이다. 러시아의 석탄 개발이 전쟁 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지원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역시 여전히 화석연료 발전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지금은 한국전력공사 등이 화석연료에 집중하고 있는데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화석연료 역시 돈을 벌어야 하는 비즈니스의 일종이다. 단순히 전기료를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시장에 보조금을 더욱 강화해 재생에너지가 시장경제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석연료에는 보조금을 줄이고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번 COP28에 대한 평가와 다음 COP29의 과제를 꼽자면….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들어가고, 100개 이상의 나라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등에 서약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번 합의문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매우 애석하지만 화석연료의 퇴출은 이제 여부(IF)가 아니라 언제(WHEN)의 문제다. 다음 당사국총회 혹은 그 다음 당사국총회에서라도 이뤄질 때까지 국가와 세계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cop28#자국 비판#러시아#기후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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