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위워크 이어 유럽 ‘빌딩재벌’ 파산신청… 상업부동산 빨간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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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빌딩 등 자산 38조원
25년만의 고금리에 자금조달 실패
글로벌 부동산-은행 연쇄타격 우려
국내 금융권 해외투자 손실 위험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흰색 크라이슬러빌딩 전경. 1930년 완공된 미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로 2019년 오스트리아 
시그나그룹과 미국 RFR홀딩스가 공동으로 매입했다. 당시 매입가는 땅값을 제외하고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였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흰색 크라이슬러빌딩 전경. 1930년 완공된 미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로 2019년 오스트리아 시그나그룹과 미국 RFR홀딩스가 공동으로 매입했다. 당시 매입가는 땅값을 제외하고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였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빌딩을 비롯해 글로벌 랜드마크 빌딩을 거느린 오스트리아 부동산·유통 기업 시그나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자산 규모 38조 원이 넘는 기업이 고금리와 상업부동산 찬 바람에 만기가 돌아온 대출을 갚지 못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미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 파산에 이어 유럽 거물 부동산 재벌도 무너지자 각국 규제 당국과 시장은 상업부동산과 금융기관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동산 시장의 가장 드라마틱한 추락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 25년 만의 고금리에 무너진 부동산 거물


시그나그룹은 이날 오스트리아 빈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며 ‘자율 관리 형태’로 채무 조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대주주 르네 벵코가 “영국 왕실 수준”이라며 자랑했던 세계 랜드마크급 부동산도 고금리 여파를 견디지 못했다. JP모건은 시그나그룹 주요 자회사 부채가 1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70억 유로(약 38조 원)를 보유한 시그나의 창업자 벵코는 세계 부동산 시장의 유명 인사였다. 2019년 미국 부동산투자기업 RFR과 공동으로 1억5000만 달러에 크라이슬러빌딩(부지는 제외)을 매입해 주목받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셀프리지 백화점, 베를린 간판 카데베 백화점 등 유럽 번화가 백화점도 순식간에 사들였다. 시그나그룹은 이번 파산의 원인과 관련해 “유통부문 투자 수익률이 예상보다 낮은 여파가 컸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유로화 25년 역사상 가장 높은 금리와 시그나 자산이 몰린 독일 부동산 폭락이 파산에 이르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창업자 벵코는 고금리 중에도 부채를 늘려 자산을 취득했다. 태국 부동산 재벌 센트럴그룹과 손잡고 스위스 명품 백화점 체인 글로버스를 인수하고 64층짜리 독일 함부르크 타워 등 대규모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가 저물자 자산가치는 하락했고, 대출 만기 연장도 어려워졌다. 벵코는 파산 직전까지 단기자금 6억 달러를 구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와 행동주의펀드 엘리엇 등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결국 불발됐다.

● 세계 상업 부동산 가격 하락 자극할 수도


각국 규제 당국과 시장은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를 네하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기자들에게 “(시그나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 특히 은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오스트리아 최대 은행 라이파젠이 시그나에 빌려준 대출 등 손실액이 7억5500만 유로(약 1조700억 원)에 달하며, 스위스 율리우스 베어 은행은 6억 스위스프랑(약 8900억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집계된다고 보도했다.

최근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독일 경제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시그나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추진했던 64층 빌딩 건설 사업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독일 경제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이 불안해지면 전체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시그나그룹이 일부라도 부동산 매각에 나서면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을 더욱 부채질해 유럽 은행들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 상업부동산은 저금리 시대에 투자 열풍이 불었지만 팬데믹 시기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한파를 맞았다. 미국도 공유오피스 위워크 파산과 공실률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 상업용 부동산 한파에 국내 금융권의 부동산 해외투자 손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 텍사스주 댈러스의 오피스 4개 동을 투자액보다 약 23% 낮은 금액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2018년 출시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피스빌딩 공모 펀드 손실률은 80%를 넘어섰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투자한 해외 자산들도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신규 투자는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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