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펌프로 전국 제패한 오락실 고인물 [브랜더쿠]

  • 인터비즈
  • 입력 2023년 11월 15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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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혼돈의 오락실 풍경, 그리고 처음 만난 리듬 게임
오락실에 처음 빠졌던 초등학생 시절, 그곳은 항상 즐거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한쪽에선 대학생 커플이 즐겁게 총 게임을 하며 데이트하고 있었고, 한쪽에선 "게임 그따위로 치사하게 하지 마라"는 고성이 오가면서 의자가 날아다녔다.

그 와중에 가장 질서가 있는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펌프', 'Ez2dj'로 대표되는 리듬 게임이었다. 리듬 게임은 그 시끄러운 오락실 안에서도 음악이 중요한 게임인지라 압도적인 사운드를 자랑했다. 그리고 게임기 주변에는 항상 10여 명의 중·고등학생 구경꾼이 몰려 있었다.

혼자 게임에 몰두해 나만 잘하면 되는 게임. 더불어 놀랄 만한 실력을 보여주면 주변 갤러리들이 박수 쳐주는 게임. '철권'을 잘했다는 죄로 대학생 형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억이 있던, 가뜩이나 소심한데 더 소심해진 필자에게 리듬 게임은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인 게임이었다. 매일 학원이 끝나고 물끄러미 구경만 하던 수많은 나날이 흐르고 어느 날, 약 6개가 넘는 코인 대기*를 뚫고 처음으로 펌프에 도전했다.
*코인 대기: 인기 게임의 경우, 기계의 빈 곳에 동전을 올려서 '다음엔 제가 플레이하겠습니다'라고 순번을 받는다

리듬 게임이란?

리듬 게임이란 음악에 맞춰서 손, 혹은 몸을 사용해 조작하는 게임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1990년대 말, 오락실의 간판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넘어온 '댄스 댄스 레볼루션(DDR)'의 선풍적인 인기를 시작으로 한국 개발사에서도 하나둘씩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가장 빛을 본 게임이 '펌프 잇 업(일명 펌프)'와 'Ez2dj'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락실 리듬 게임 펌프 잇 업.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락실 리듬 게임 펌프 잇 업.


첫 리듬 게임 도전의 쓰라린 기억
하지만 성장기가 오지 않은 초딩에게 펌프 발판은 너무 광활했다. 분명 밟았다고 생각한 화살표는 자비 없이 빗나갔다. 놓쳤다는 표식인 'miss'가 화면에 연달아 등장했고, 앞사람이 일찍 죽을수록 본인 순서가 돌아오는 법이니 그 누구도 '다리를 앞으로 더 뻗어'하는 조언해 주지 않았다. 오락실은 강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전쟁터였다.

Ez2dj도 마찬가지. 다리가 짧은데 손가락이라고 길 리가 없으니, 분명 턴테이블을 돌렸다고 생각했지만 야속하게도 돌아가지 않았다. 사지를 더 길게 뻗어야 다른 누나 형님들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자그마치 한 달이 걸렸다. 그 후로는 그냥저냥 게임 좋아하는 학생이 됐다. 학원이 끝날 때마다 '뫼비우스의 띠', 'yes yes' 등 좋아하는 곡에 도전하며 한 번씩 게임하고 귀가하는 것이 전부였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전쟁터
당시 동네에서 펌프를 잘하냐 못하냐의 기준은 곡 'Come back'을 깨는가 못 깨는가로 나뉘었다. 당연히 가장 많이 본 장면도 이 곡의 하이라이트 구간을 넘기는 장면, 넘기지 못하고 실패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님이 히든 보스와 같은 곡 'Extravaganza'를 플레이하는 것을 목격했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곡을 현란한 발놀림으로 깨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의기양양함과 주변 갤러리들의 놀란 눈빛은 대충 '뫼비우스의 띠' 등 익숙한 곡만 깨고 귀가하던 한 초딩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그 초딩은 인생 처음으로 '내가 저 형님들을 이겨야겠다'며 승리욕을 활활 불태웠다.

그 후로 필자에게 리듬 게임은 놀이가 아니라 전쟁이 됐다. 잘하는 플레이어를 매의 눈으로 훔쳐보며 따라 했고, 완벽하게 클리어하지 못할 것 같으면 놓아버리고 판을 내려오던 습관도 없어졌다. 어머니는 영어 학원 다녀온 애가 땀 범벅이 돼 돌아오니 학원에서 체력 운동을 시키나 의심했다. 당시엔 살집이 좀 있던 지라, 운동 겸 하겠다는 핑계를 댔다.

매일같이 출석해 펌프를 하려는 사람이 많아 대기해야 하거나 게임이 안 될 것 같을 땐 Ez2dj를 연습, 아니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형님들이 플레이하던 'Extravaganza'를 정복한, 동네에서 가장 리듬 게임을 잘하는 꼬맹이가 됐다.

동네 고수에서 전국구 오타쿠로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대학생이 돼서도 게임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한번 오락실에 가면 3시간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학교 수업을 제외한 시간엔 그냥 항상 오락실에 있었다.

그사이 시대는 바뀌어 인터넷이 전국의 사람들을 이어주기 시작했다. 펌프 골목대장 꼬맹이의 눈은 또 한 번 번쩍 뜨였다. '괴수'가 전국에 즐비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 그들의 게임 클리어 공식이 그렇게나 쉽고 깔끔하다는 데 기절했다. 클리어하겠다고 그렇게 난리 치던 곡을, 코 파면서 손이나 풀듯이 상상도 못할 점수로 깨버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괴수들을 볼 때마다 좌절감에 휩싸였다. 구경도 못 해본 그 점수를 뛰어넘기 위해 일주일 내내 오락실에 출근해 그 곡을 플레이하고, 또 플레이했다.

당시 흔했던 오락실 전경. 사진 속 오락실 역시 현재는 사라졌다.
당시 흔했던 오락실 전경. 사진 속 오락실 역시 현재는 사라졌다.


넓어진 세상이 준 가능성과 또 한 번 불타오른 승리욕 덕분에 더더욱 펌프와 Ez2dj를 깊게 파고들었다. 필자는 괴수들과 비교하면 동체 시력과 노트 처리 능력**이 뒤떨어졌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역 꾸역 게임을 하며 방법을 찾았다. 게임별 노하우와 공략이 점차 쌓이기 시작했다. 어떤 게임은 판정이 후하고, 어떤 게임은 틀리지 않고 연속으로 성공할 때 부여되는 점수가 높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신기록을 달성해냈다. 쌓인 노하우로 난공불락의 곡을 공략하는 나만의 방법을 논문처럼 커뮤니티에 정리해 올리기도 하고, 고수들이 주로 서식한다는 오락실에 모여 서로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리겜(리듬게임) 학회' 같은 것에 참가하기도 했다.
**떨어지는 화살표 등의 표식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맞추는 능력

결국 언제부턴가 전국구 오타쿠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하나도 틀리지 않는 'No miss play'가 불가능할 것 같은 곡들에 전국 최초로 쉬운 정복법을 제시한 적도 있고, 실제 전국 최초로 'No miss play'를 달성한 곡도 존재한다. 전국 5위권에 드는 점수를 낸 곡도 다수 있다. 리듬 게임 'Djmax Technika' 최초의 온라인 랭킹전에서 전국 2위를 유지한 적도 있다. 이 외에도 유비트, 드럼매니아 등 출시된 거의 모든 리듬 게임에서 박사급 성과를 달성했다.

머리에 리듬 게임 밖에 없었다
가끔 친구들이나 배우자가 '그 노력으로 공부를 했다면', '스타크래프트나 롤처럼 돈 잘 버는 게임을 그만큼 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솔직히 본인도 아까운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넋 놓고 푹 빠진 게임이 하필 리듬 게임이었던 것을.

많은 오락실이 문을 닫고 PC와 모바일 중심으로 게임 시장이 바뀌었다. 오락실에 모여 게임을 할 때는 플레이 중인 사람에게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 해 봐라'며 말을 붙이거나 혹은 '방금 어떻게 한 거냐'라며 더 높은 점수를 내는 법, 어려운 부분을 클리어하는 법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PC 게임에서 어리바리한 플레이어가 욕 먹기 일쑤인 것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 만나는 인맥의 절반 이상이 당시 오락실에서 만나 친해진 사람들이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문득, 과거 오락실의 정겨운 분위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송의정 필자
정리=지희수 기자 heesu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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