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친구가 세상을 떠나면 코끼리도 장례를 치른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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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케이틀린 오코넬 지음·이선주 옮김·현대지성/360쪽·1만 8000원

암컷 아프리카코끼리 빅마마(왼쪽)와 그의 딸 난디가 힘을 합쳐 구덩이에 빠진 난디의 새끼를 구하려고 무릎을 꿇고 있다. ⓒ케이틀린 오코넬·티머시 로드웰, 현대지성 제공
암컷 아프리카코끼리 빅마마(왼쪽)와 그의 딸 난디가 힘을 합쳐 구덩이에 빠진 난디의 새끼를 구하려고 무릎을 꿇고 있다. ⓒ케이틀린 오코넬·티머시 로드웰, 현대지성 제공
동물도 죽음을 슬퍼한다. 적지 않은 종이 가까운 사이였던 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꽤 오랫동안 곁을 지킨다. 일종의 애도 의례다.

얼룩말은 죽은 얼룩말의 사체 곁에 한동안 꼼짝 않고 머문다. 코끼리는 죽은 코끼리의 몸에 흙을 뿌려 매장하고 사체가 있는 장소로 반복해 되돌아온다. 코끼리의 ‘장례’인 셈이다. 죽음을 목격한 원숭이는 상실감에 빠져 평소보다 더 많은 상대와 털 고르기를 한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애도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다.

30년 이상 세계 각지에서 코끼리를 연구한 미국 행동생태학자인 저자는 코끼리를 비롯해 다양한 야생동물의 인사와 놀이, 애도, 선물 등 10가지 의례 행동을 소개한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들 의례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놀이를 통해 배우듯 동물도 놀며 생존과 번식 기술을 깨친다.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사막에서 연구하던 저자는 어느 날 눈을 뜨자마자 새끼 사자들이 암사자와 함께 활기차게 노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사냥 연습을 하듯 서로 거칠게 부딪치고 머리와 목을 물며 장난을 쳤다. 기린도 목을 서로 감싸 상대의 옆구리를 들이박는 ‘네킹’이란 싸움 놀이를 한다. 목을 얼마나 친밀하게 감싸느냐는 기린의 짝짓기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선물은 동물에게도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갈라파고스제도 에스파뇰라섬의 멸종위기종인 코끼리거북은 구애할 때 상대에게 야생 토마토를 선물한다. 코끼리거북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푸른발부비새 수컷은 둥지를 지을 때 필요한 나뭇가지나 돌을 암컷에게 건네며 구애한다. 환경이 바뀌어 더이상 둥지가 아닌 맨땅에 알을 낳는데도 조상의 습성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을 위해 인사가 왜 중요한지, 집단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무얼 의미하는지 등을 다채로운 동물 행동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저자가 찍은 생생한 사진도 풍성하게 실렸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 자연은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의례하는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기술 발달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 단절된 현대인이 다시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관계 회복에 필수적인 의례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영국 작가 겸 영문학자 C S 루이스(1898∼1963)가 ‘실낙원’ 서문에 남긴 말을 인용하며 의례의 의미를 강조한다. “의례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다면 우리는 의례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의례를 치르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고는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거기에 집중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코끼리#장례#의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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