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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생명의 시작은 썩어서 없어지는 것”

입력 2022-12-10 03:00업데이트 2022-12-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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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의 철학/후지하라 다쓰시 지음·박성관 옮김/396쪽·2만3000원·사월의책
“분해란 부수는 행위로되, 각 요소들을 다른 개체의 식사 행위나 다음 단계의 어떤 생성을 위해 과도하게 부서지지 않는 상태로 보류하여 그 개체에게 맡기는 일이며, 그런 까닭에 분해는 각 요소들의 합성인 창조에 필수적인 전제 기반이다.”

인류사에서 분해나 부패는 그다지 주목받는 영역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생산하고 발전하는 관점에서 볼 땐 더더욱 그렇다. 특히 ‘타락’ ‘썩는다’ 등의 의미를 지닌 부패를 떠올리면 오히려 피하고 싶거나 마주하기 불편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인 저자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분해나 부패가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를 떠올려 보길 당부한다. 농업사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뭔가가 썩어야 거름이 되고, 거름이 있어야 토양이 살아나는 건 자연의 순리라고 일깨운다. 그리고 그런 순환은 인간의 역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이 책을 한때 인연을 맺었던 동네 ‘청소 아저씨’에게 헌정했다. 나이가 지긋했던 환경미화원이 하는 일이 바로 분해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쓰레기를 치우고, 또 그걸 재활용하거나 없애지 않으면 당연히 세상은 망한다. 세상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환경미화원의 존재가 소중한 가치를 지녔듯, 생산이나 소비만큼 관심 받지 못한 분해와 부패도 관심 받아 마땅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분해의 철학’은 독특한 책이다. 분해라는 착점(着點)을 갖고 자신의 논거를 짚어내는 탁월함은 의심할 바 없다. “가장 위험한 세계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 세계”라는 인식 아래 교육철학과 문학, 역사 등을 오가며 펼쳐내는 지적 향연도 감탄이 나온다. 다만 현학적인 문장들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간 한쪽으로 치우쳤던 시각을 바꾸려는 의도는 좋은데, 또 그게 너무 다른 한쪽으로 경도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2019년 제41회 산토리 학예상 수상작.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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