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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젊은 암 생존자의 슬픔[삶의 재발견/김범석]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입력 2022-12-09 03:00업데이트 2022-12-0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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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오늘도 소견서를 썼다. “상기 환자 고환암으로 수술 및 항암치료를 하였고 현재는 무병상태(no evidence of disease)로 추적관찰 중입니다. 일상생활 수행능력에 아무 문제가 없고 건강한 일반인과 같습니다.” 벌써 몇 번째 소견서인지 모르겠다.

그도 그랬다. 그는 명문 S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학위도 받았다. 학점도 좋았고 실력도 좋았기에 이 정도 스펙이면 선배들처럼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취직하기 위해 입사 원서를 냈고 무난히 서류전형에 통과해서 대기업 면접을 보았다. 초반의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고 했다. 어려운 질문에도 막힘없이 술술 대답을 했다.

문제는 이력서였다. 이력서를 검토하던 면접관이 1년간 경력이 끊긴 부분이 있어 이 1년간은 무엇을 했냐고 물어봤다. 고환암을 앓았고 항암치료를 받느라 1년간 쉬었다고 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했다. 그 뒤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며 질문이 뚝 끊겼고, 면접관끼리 수군거리더니 면접은 흐지부지 끝났다. 그는 불합격했다. 내가 면접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실력이 없어서 불합격했는지, 아니면 정말 건강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그가 불합격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물론 회사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암에 걸리면 직업과 무관한 암이어도 회사를 상대로 소송 거는 일을 종종 보았다.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암에 걸렸다는 소송이다. 이런 소송을 몇 번 겪으면 회사로서는 건강에 하자가 있는 사람을 아예 뽑지 않는 쪽으로 선회할 것이다. 요즘 같이 취직 안 되는 세상에서 암 생존자 말고도 일하겠다는 사람은 차고도 넘칠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에게 잘 발생하는 고환암, 혈액암, 육종과 같은 암들은 직무수행과 무관하다. 한때 암 환자였다는 이유로 취직에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 혹시라도 회사의 인사담당 직원이 이 칼럼을 본다면, 젊은 암 생존자는 어린 나이에 암이라는 큰 어려움을 극복했기에 정신력이 강하고 오히려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20대 젊은 암 생존자들이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출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의 힘으로 밥벌이를 하고 남들처럼만 살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장벽은 너무나 높고 사회적 낙인은 이들에게만 유독 가혹하다.





부디 이들에게 낙인만큼은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들의 밥벌이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암은 본디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암 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 모두 젊은 암 생존자에 대한 색안경만큼은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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