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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파격의 추모[이준식의 한시 한 수]〈190〉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12-09 03:00업데이트 2022-12-0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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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를 데리고 동토산에 올라, 슬픔에 잠긴 채 사안(謝安)을 애도하다.

오늘 내 기녀는 꽃처럼 달처럼 이쁘건만, 저 기녀 옛 무덤엔 마른풀만 싸늘하다.

꿈에서 흰 닭을 본 후 세상 뜬 지 삼백 년, 그대에게 술 뿌리니 우리 함께 즐겨 봅시다.

취한 김에 제멋대로 추는 청해무(靑海舞), 자줏빛 비단 모자가 가을바람에 날아간다.

그대는 그대대로 한세상, 나는 나대로 또 한세상.

거대한 물결처럼 흐르는 세월, 새삼 신기해할 게 뭐 있겠소?





(攜妓東土山, 悵然悲謝安. 我妓今朝如花月, 他妓古墳荒草寒. 白雞夢後三百歲, 灑酒澆君同所歡. 酣來自作靑海舞, 秋風吹落紫綺冠. 彼亦一時, 此亦一時, 浩浩洪流之詠何必奇?) ―‘동산에서 부르는 노래(동산음·東山吟)’ 이백(李白·701∼762)

동진(東晉)에서 재상을 지낸 사안(謝安). 그는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고도 한사코 거절하며 동산에 묻혀 지냈는데 후일 재상직을 맡아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은거하든 관직에 있든 그는 음주와 시, 기녀, 자연 등과 더불어 풍류를 즐긴 것으로 유명했고 뭇 사대부들의 부러움을 샀다.

30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시인은 고인의 풍모를 추념하여 그 무덤을 찾는다. 이런 자리에 기녀를 동반하고 춤까지 춘다는 건 이백다운 일탈이 아니고는 상상조차 어렵다. 고인과의 유대감을 다져 보겠다는 파격의 추모 방식이다. 꽃처럼 달처럼 이쁜 지금의 기녀, 그에 비해 마른풀만 싸늘하게 나부끼는 무덤 속 기녀. 이 대조적인 모습에 그대 행여 마음 씁쓸하다면 내 술 한잔 받으시고 내 춤사위를 즐기시구려. 인생무상은 새삼 환기할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도리. 어차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 게 우리네 인생인 것을. 세월의 수레바퀴는 흐르는 물결처럼 거연(巨然)히 구르는 법. 혹 누군가가 이를 거북스러워한다면 그게 외려 더 이상하지 않겠소.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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