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손에 들고 어쩔 줄 모르는 곰돌이 푸”…창의적 中시위 이모저모

  • 뉴시스
  • 입력 2022년 12월 2일 1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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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의 시위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시위대들이 당국의 억압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내기 때문이다. 미국 CNN이 1일(현지시간) “중국 시위대의 코믹한 창의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한 내용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곰돌이 푸’로 묘사된다. 당국이 검열로 삭제하는 걸 피해 ‘5월35일’이 라는 가상의 날짜가 등장했다. 성희롱을 일삼는 고위당국자는 “라이스 버니(Rice Bunny: 아시아 남성과 섹스를 즐기는 백인 여성을 뜻하는 속어)”로 부른다.

이처럼 중국 시위대들은 중국 지도자들에게는 없는 코믹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5월35일은 1989년 6월4일 톈안먼 광장 학살을 가리킨다. 중국 당국이 인터넷에서 톈안먼을 뜻하는 영어 단어 “Tiananmen“을 찾아 지우기 때문에 만들어진 표현이다. 6월4일은 톈안먼 광장 학살을 떠오르게 하는 만큼 5월부터 날짜를 하나 하나 세어 달력에는 없는 5월35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밥이 가득 담긴 주발과 작은 토끼가 함께 있는 이모티콘은 당국이 ”#MeToo“라는 표현을 인터넷에서 삭제하는 걸 피해 만들어진 표현이다. 쌀의 발음이 ”미(米)“고 토끼의 발음이 ”투(兎)“다. 원래 의미와는 딴 판이다.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 강력한 독재국가로 부상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호전적 발언을 일삼지만 이들의 발언에 유머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중국 역사에는 정치적 오판과 그로 인한 피해를 유머러스하게 꼬집은 일들이 넘쳐 난다.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은 구금, 체포 이상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봉쇄 해제를 넘어 정치 변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친 사람들이 그렇다. 이 때문에 추모와 엄숙함 대신 각종 유희적 수단이 동원된다. 당국의 발표를 패러디하고 검열을 조롱하며 가부장적 지도자를 무시한다.

관영 매체들이 시위를 ”외국“의 조종을 받는 것으로 비난하자 베이징 대학생들이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그 외국인이 누구냐?“라고 묻고 아마도 중국 공산당이 몇 세대 동안 강조해온 마르크스와 엥겔스일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 명문 칭화대 대학생들은 지난주 1920년대부터 인용돼온 물리학 방정식을 쓴 백지를 들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맞춰보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들이 알렉산더 프리드먼을 찾아냈다. 해방(liberation)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포함된 그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다. 팽창은 적어도 봉쇄돼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지 않는 단어다.

이번 시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용품이 백지 A4 용지다. 터무니없는 압제를 비난하는 내용을 각자 알아서 채우라는 의미다. 중국 소셜 미디어들은 이를 두고 ”백지 운동“이나 ”A4 혁명“으로 부른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가 정치범으로 억류돼 참석하지 못한 채 시상식이 열린 것을 연상시키는 일이다. 류샤오보는 결국 감옥에서 숨졌다.

백지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당국의 검열로 모든 단어가 금기어가 될 수 있음을 조롱한다. 지독한 검열로도 걸러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 국가의 지나친 개입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의 말을 뺏을 순 없는 일이니까. 코로나 봉쇄를 강요하는 흰색 방호복을 입은 당국자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백지 시위 방식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도 신문들은 지면에 공란을 남겨 기사가 당국에 의해 삭제됐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곤 한다. 백지는 2020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도 등장했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중국 회화 역사 1500년의 전통 미학이 작용하는 듯하다.

1958년 마오쩌뚱은 중국인들이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이후 중국은 훨씬 부유해졌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여전히 내심 중국인들을 자신들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캔버스로 남겨 두기를 바란다. 이 같은 속마음을 백지혁명이 파고든 셈이다.

누구도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위에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드물게 벌어진 시위는 모두 지역 현안이 원인이었다. 또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이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을 오폭했을 당시처럼 정부가 촉발 내지 용인하는 시위만 있었다.

최근의 시위는 이례적이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여러 계층이 참여하면서 시진핑 주석의 정책을 공격한다.

시 주석은 곰돌이 푸로 묘사된다. 시주석이 곰돌이 푸가 된 건 2013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다. 누군가 호랑이 옆을 걷는 뚱뚱한 곰의 모습을 묘하게 닮았다고 했다. 서거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4년 시 주석과 악수한 장면을 본 한 네티즌은 아베를 서글픈 눈을 한 당나귀 ‘이요‘에 비유했었다.

중국 정치 담론에 동물이 등장한 건 100년도 더 됐다. ’주구(走狗)‘라는 표현으로 정적을 공격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어제 서거한 장쩌민 전 주석은 ”두꺼비“로 묘사된다. 시주석과 대비되는 전 지도자에 대한 향수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밈이다.

1912년 중국 공화국을 건설한 손문을 제치고 스스로 주석이 된 위안스카이는 원숭이로 묘사됐다. 위안스카이는 1915년 자칭 황제가 됐다.

2018년 시 주석이 헌법을 개정해 연임제한을 없앴다. 그러자 비판자들이 황제 복장과 왕관을 쓴 곰돌이 푸를 등장시켰다. 위안스카이 사진도 등장했다. 시주석을 중국 근대사에서 잠깐 등장한 인물에 비유함으로써 그의 시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당국은 황제 차림의 곰돌이 푸를 인터넷에서 모두 지웠다.

새로 등장한 곰돌이 푸 밈은 손에 든 백지를 고민스럽게 쳐다보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모습이다. 누구나 아는 백지의 의미를 곰돌이 푸만 모르고 있다는 건 중국이 전환기에 처해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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