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전쟁 대비는 군 혼자의 몫이 아니다. 국가 총력전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에도 우크라이나가 꿋꿋하게 항전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미국 등 서방세계의 지원뿐만 아니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국민적 저력이라고 본다.
선제 핵 공격 협박과 미사일 연쇄 도발 등 북한의 전례 없는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우리는 어떠한가. 여야 정치권은 군의 잘못만 질타하면서 위기의 책임을 신구(新舊) 정권 탓으로 돌리며 ‘네 탓 정쟁’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뒤늦게 국회 본회의에서 대북 규탄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해법을 두고선 여전히 딴 목소리다. ‘핵발톱’을 드러낸 북한의 막가파식 도발 앞에서도 자중지란을 노출한 격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북한 핵 위기의 본질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필자는 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독재정권이 가공할 핵무기로 대한민국의 숨통을 겨눈 살얼음판 같은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 관계자는 “집권 10년간 증강 배치한 다종다양한 핵·미사일을 믿고서 젊고 호전적인 독재자가 오판할 개연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서울 불바다’를 연상케 하는 막가파식 도발 위협을 서슴지 않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향후 북한은 핵 실전 사용을 포함한 더 대담한 속전속결식 전쟁 계획을 획책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동시다발적 핵 타격과 사이버공격 등으로 한국 정부와 전쟁 지휘부를 일거에 무력화하고 미 증원전력의 출입로(주요 공항, 항구)를 파괴한 뒤 서울을 점령하고 추가 핵 공격 위협과 함께 휴전을 요구하면 한미가 백기 투항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미국이 개입하면 핵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뉴욕과 워싱턴을 동시 타격하겠다고 협박하는 시나리오도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 핵추진 항공모함과 B-1B 전략폭격기 등 미 전략자산이 줄줄이 전개된 대규모 연합훈련에도 아랑곳없이 한미를 정조준해 괴물 ICBM인 화성-17형 등을 연이어 쏜 것이 그 증거다. 개전 초 대북 확장억제와 미 증원전력을 저지하기 위해 대미 핵 도발까지 불사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유사시 한국 내 불안과 혼란을 부채질하고 남남갈등을 극대화하는 데도 핵 위협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핵전쟁 위기의 책임을 미국의 탓으로 돌리는 가짜뉴스를 퍼뜨릴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 대처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과 세대 및 이념 간 극심한 반목과 대결을 유도해 우리 정부와 군의 단호한 대응에 발목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핵을 활용한 전면 도발이나 대규모 확전 등 분초를 다투는 위기 상황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과 진영 갈등은 한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북한 지도부는 판단할 개연성이 크다.
군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핵을 사용할 수 없도록 억지하고 유사시 대응태세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안보 정쟁을 멈추고 북핵 대응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국민적 관심과 비상한 의지를 결집하는 데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 어떤 핵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 정권에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북한의 핵 위협에서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확장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