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낮게 기운 햇빛… 빛과 공간을 담은 그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3일 12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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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기울어진 해. 어스레하게 거실로 들어온 햇빛을 반려견이 정면으로 맞고 있다. 차창 너머에 있는 푸르른 나무들은 나른함을 더한다. 고즈넉한 연출 덕일까. 완성된 그림이지만, 계속 바라보다보면 해가 움직일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황선태 작가의 신작 ‘빛이 드는 공간‘의 이야기다.

황선태, 빛이 드는 공간, 2022

빛을 소재로 작업해온 황 작가의 개인전 ‘빛-시간을 담다’가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황 작가의 유리 드로잉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작업의 시작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황 작가는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는 ‘죽은 집’, ‘죽은 사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물들도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 굳이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소파 위 쿠션, 탁자 위의 커피 잔만 봐도 그곳에 어떤 사람이 머물렀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요? 사람을 표현하게 되면, 사물의 존재감 그 자체보다는 그 사람으로 인한 많은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사람에 대한 복잡다단한 정보를 삭제하고 최소한의 요소만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황선태, 빛이 드는 공간, 2022
황선태, 빛이 드는 공간, 2022

실제 그의 작품에는 색, 무늬, 질감 등 대개의 것이 생략됐다. 오로지 빛과 선을 사용했다. 황 작가는 “내 작품의 선은 크로키할 때처럼 감정을 넣어 그린 선이 아니라, 글자의 선처럼 사물을 지칭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선”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빛이다. 그의 작품은 LED 조명을 끄면 실내 조감도 같은 선만 남는다. 황 작가가 “빛은 사물이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근원에 해당한다”며 중요성을 설파한 이유다.

작품은 단순해보이지만,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각 작품마다 약 4개의 레이어로 이뤄져있다. 강화 유리 뒷면을 놓고 그 뒤에 간략한 선으로 묘사한 실내 드로잉과 풍경 사진을 인쇄한 필름, 빛이 투과하는 지점만 잘라낸 필름을 순서대로 전사한 뒤 LED 조명을 비추면 완성이다.

황선태, 빛이 있는 공간, 2022
황선태, 빛이 있는 공간, 2022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실외 작업이다. 이제껏 황 작가는 주로 실내를 그려왔다. 책상이나 소파가 놓인 실내 공간에 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이 쬐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골목길 모습, 한눈에 야경이 보이는 벤치를 그린 작품 3점이 함께 전시됐다. 황 작가는 “실내 작업은 ‘빛이 드는 공간’이라는 이름을, 실외 작업은 ‘빛이 있는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목이 작품을 넘어서면 안 되기에 간단하게 구분 지었다”고 했다.

황선태, 빛이 있는 공간, 2022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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