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기규제의 이중잣대가 어린이 22명 목숨 앗아갔다

  • 뉴스1
  • 입력 2022년 10월 11일 1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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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이중적 총기규제가 어린이22명을 포함한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로 이어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진단했다. 태국에서 총기는 일반 시민에게는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경찰, 군인 등 보안군은 원하는 만큼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최근 총기난사가 발생하기 전 2020년 2월 발생한 총기 사건 역시 불만을 품은 군인이 쇼핑몰과 육군 기지에서 총격을 가해 29명이 숨졌다. 이번 이번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파냐 캄랍(34) 역시 경찰 시절 합법적으로 확보한 9mm 권총을 범행에 사용했다. 태국 총기법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이중 잣대

태국의 총기 규제는 이미 엄격하다. 민간인들은 호신용이 아닌 공격을 위한 무기(Assault weapon)를 소지할 수 없다. 민간인들은 40%의 수입세를 감당하면서도 제한된 수량의 총기와 탄약만 구매할 수 있다.

구매 과정도 까다롭다. 총기 구매 희망자들은 신원 조사를 받아야 하고 사냥이나 정당방위를 위한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어기고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한 경우는 최고 10년의 징역형과 2만 바트(약 75만820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태국 경찰과 군인 등 보안군들은 정부를 통해 원하는 만큼의 무기를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번 이번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파냐 캄랍도 경찰 시절 합법적으로 확보한 9mm 권총을 범행에 사용했다. 산탄총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2020년 2월에는 32세 자크라판스 토마로 알려진 군인이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불만을 품고 부대에서 무기를 훔쳐 육군 기지와 한 쇼핑몰에서 총기를 난사했다. 이 사건으로 29명이 사망했고 용의자도 보안군에 의해 사살됐다.

지난 달에도 한 육군 장교가 방콕의 한 군사대학에서 두 명의 동료를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이같은 사건들은 총기 소지와 군국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태국 남부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에 아누틴 차른비라쿨 보건장관은 보안요원들이 총격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우려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분명히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라며 “국무총리와 경찰서장 등 책임자들이 현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법 집행을 강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기 아니라 마약중독 ‘축소’

23만 명의 태국 경찰 조직원과 24만5000명 이상의 군대를 포함한 태국 군부의 총기 소지 관련 규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현행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일부 정부 관리들은 최근의 사건을 단지 ‘일회성 비극’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보안군의 자유로운 총기소지가 아닌 마약 중독에 의한 ‘사고’로 몰아가고 있는 것.

캄랍은 범행 당시에도 마약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애초에 지난해 6월 마약 복용 혐의로 경찰에서 해고됐다.

프라위트 왕수완 부총리는 캄랍이 ‘마약 중독자’이기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태국의 살인율은 특별히 높지 않고 몇 년 전의 통계는 필리핀보다 낮으며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전 뉴욕시와 대략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과 같은 총기 난사 사건은 드문 편이다. 태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총격 사건은 2020년 한 군인이 4개 지역에서 벌인 난동으로 29명이 숨지고 57명이 부상당한 이 사건 이후 2년 만이다.

그럼에도 군 고위 관리들마저 이번 사건 이후 즉각 총기 정책 개편을 요구하는 등 총기 규제 논의 필요성에 조금씩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위원회 부위원장인 치타팟 끄리다꼰 민주당 의원은 총기 소지와 총기 범죄를 통제할 장단기 대책이 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합법적인 총기 소지 요건 강화와 총기 면허를 2~3년 단위로 갱신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총=권력’…암시장 불법거래 성행

태국에서 총기 소지는 ‘권력, 위신, 돈’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민간인들도 총을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소지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민간인들이 총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암시장으로 향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를테면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 구매할 수 있는 총기인 ‘글락19’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2000달러를 내야 하고 6개월 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온라인 암시장에서는 1000달러에 바로 구매 가능하다.

무기거래를 연구하고 태국에서 현장조사를 해온 마이클 피카르 독립연구원은 “온라인에서는 해당 총기를 구매하는데 절반의 비용만 든다”며 “경찰관 한 명은 약 600달러에 같은 총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또 “600달러에 총을 구매한 경찰 혹은 군인은 암시장 구매자에게 온라인에 개인정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체포하겠다고 위협해 추가로 금품 등을 갈취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연구원은 얼마 전 소셜미디어(SNS)에서 암시장 무기 판매자를 추적하던 중, 한 판매자가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구매자의 개인정보를 스크린샷으로 올려 공개 처형하려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스위스의 국제무기조사단체 스몰암스서베이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태국에는 400만 정의 불법 총기를 포함해 약 1000만 정의 개인 소유 총기가 있다.

그해 태국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의 77.5%에 해당하는 3만6000여건에 무허가 총기가 사용됐다. 치타팟 의원은 “모든 정당이 모여 이 문제를 다뤄야 할 시점”이라며 “경찰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하원에서 총기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일 태국 북동부 지역의 한 보육시설에서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린이 등 최소 38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직 경찰인 용의자는 현장에서 돌아와 가족들까지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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