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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재대결 번지는 복싱의 과거 회귀[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입력 2022-10-04 03:00업데이트 2022-10-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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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복싱 스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왼쪽)가 지난달 25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일본 격투기 스타 아사쿠라 미쿠루와의 경기에서 상대를 다운시킨 뒤 바라보고 있다. 메이웨더가 2회 TKO로 이겼다. 사이타마=AP 뉴시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관계자들이 벌써부터 내게 얼마를 줄 수 있는지 얘기하고 있다. 9자리 숫자다.”

은퇴한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45·미국)가 최근 이종격투기 UFC 스타 코너 맥그리거(34·아일랜드)와의 재대결 가능성을 밝히며 떠벌린 말이다. 9자리 숫자면 억 단위다. 대전료를 1억 달러로 잡아도 1440억 원가량이다.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재대결을 위한 양측의 접촉이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메이웨더는 2017년 8월 맥그리거와의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웰터급 타이틀 매치에서 10회 TKO 승을 거둔 뒤 50전 전승으로 은퇴했다. 이종격투기 선수인 맥그리거가 프로복싱 도전자로 나서는 것이 애당초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 점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끌었다. 메이웨더는 복싱 챔피언으로서의 체면을 지켰고, 맥그리거는 복싱 룰로만 당대 최강 챔피언과 맞섰는데도 10회까지 버티며 선전했다는 호평을 들었다. 메이웨더는 대전료로만 1억 달러, 맥그리거는 3000만 달러(약 432억 원)를 챙겼다. 게다가 메이웨더는 1.5kg짜리 순금 판 위에 다이아몬드 3360개, 사파이어 600개, 에메랄드 300개가 박힌 약 30억 원짜리 챔피언 벨트까지 부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이 호화로운 이벤트 이후 그만큼 눈길을 끄는 복싱 경기는 열리지 않고 있다. 올해 열린 가장 굵직한 경기로는 18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겐나디 골롭킨(40·카자흐스탄)과 사울 카넬로 알바레스(32·멕시코)와의 세 번째 맞대결을 꼽을 수 있다. 고려인 외할아버지를 두어 한국계 혈통을 지닌 골롭킨은 세계복싱협회(WBA), WBC, 국제복싱연맹(IBF), 세계복싱기구(WBO) 슈퍼미들급 통합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 알바레스에게 0-3 판정패했다. 미들급 최강자인 둘은 2017년과 2018년에도 맞붙었다. 1차전은 무승부였고, 2차전은 골롭킨의 판정패였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타이슨 퓨리(34·영국)와 디온테이 와일더(37·미국)의 WBC 헤비급 타이틀 매치도 주목할 만한 경기였다. 두 선수 역시 세 번째 맞대결이었다. 2018년 12월 첫 대결은 무승부였고, 2020년 2월 두 번째 대결에서는 퓨리의 7회 TKO 승, 세 번째 대결에서는 퓨리의 11회 KO 승이었다.

이 경기들은 최근 복싱계의 빅매치로 꼽혔지만 화제성으로나 수익으로나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경기에는 못 미쳤다. 알바레스의 대전료는 4500만 달러(약 648억 원), 퓨리의 대전료는 3000만 달러(약 432억 원)였다.

이처럼 최근 복싱계에서 손꼽히는 경기의 특징은 재대결이라는 데 있다. 신예들과의 대결이 아닌, 이미 정점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는 스타들 간의 대결이었다. 현역 최강자들의 경기들은 은퇴한 메이웨더의 경기보다 관심을 끌지 못했다. 메이웨더 이후 새로운 복싱 슈퍼스타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메이웨더는 은퇴한 뒤 40대 중반 나이에도 이종격투기 선수나 블로거 등을 상대로 각종 이벤트 경기를 벌여오고 있다.

순수 복서끼리의 대결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은 최근 경기로는 2015년 메이웨더와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키아오(44)의 맞대결을 꼽을 수 있다. ‘세기의 대결’로 불린 당시 메이웨더의 대전료는 27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그 경기를 두고 ‘복싱의 사망 선고’였다는 표현이 나왔다. 메이웨더의 판정승으로 끝난 이 경기는 양측이 조심하며 지루하게 진행됐다. 안 그래도 이종격투기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복싱계 최대의 빅매치가 지루하게 끝나면서 대중에게 복싱은 재미없는 경기라는 이미지를 더 깊게 심어주리라는 우려가 번졌다. 복싱 하향세가 꼭 이 경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경기는 복싱 하향세에 대한 우려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실제로 복싱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런 침체 속에서는 새 스타가 나오기 어렵다. 이러한 신예 스타 부재가 복싱계에서 옛 스타들 간의 재대결이 번져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제는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재대결뿐만 아니라 메이웨더와 파키아오의 재대결설까지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은퇴한 파키아오는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뒤 재기를 노리고 있다. 메이웨더는 계속 돈을 벌어 좋겠지만 복싱은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듯하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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