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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여자 무솔리니’ [횡설수설/이정은]

입력 2022-09-27 03:00업데이트 2022-09-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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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이오 소노 조르자(Io Sono Giorgia)’라는 제목의 리믹스 곡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극우 성향 정치인인 조르자 멜로니가 한 집회에서 높은 톤으로 외쳐댄 발언에 디스코풍의 리듬을 입힌 곡이었다. 진보적 디제이들이 그를 조롱하려고 만든 이 음악 동영상은 아이러니하게도 12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군소정당을 이끌던 고졸 출신의 40대 미혼모 정치인이 일약 스타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는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극우파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에 대해 “그가 했던 모든 일은 조국을 위한 것이었다”고 추켜올렸다. “50년 동안 그런 정치인은 나온 적이 없었다”고도 했다. 음악으로 각색된 3년 전 연설도 ‘무솔리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내용이다. “나는 조르자, 어머니이고 이탈리아인이며 기독교”로 시작되는 당시 발언은 무솔리니 정권의 슬로건이었던 ‘신, 조국, 가족’과 유사하다.

▷무솔리니는 언론과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며 21년간 장기 집권의 흑역사를 썼다.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유럽의 양대 미치광이 독재자로 꼽힌다. 전위 민병대 ‘검은 셔츠단’을 앞세워 나라를 파시즘의 광기 속에 몰아넣었던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런 무솔리니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멜로니는 “웃기는 일”이라고 일축해 왔다. 파시즘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자신은 ‘네오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논란이 된 파시스트 슬로건에 대해서는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선언일 뿐”이라고 했다.

▷반대파들은 그를 향해 ‘위험한 극단주의자’, ‘이탈리아의 히틀러’라는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형국이다. 탈(脫)유럽연합(EU)을 외쳐온 그가 EU의 단결을 흔드는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계심이 상당하다. 그가 이끄는 우파연합의 친러 성향으로 볼 때 향후 러시아에 맞선 서방의 대동단결 전선에 구멍을 낼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는 딱지가 붙은 이유다.

▷이탈리아는 지난 20년간 정권이 11번 바뀔 정도로 정치적 리더십이 불안정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과 인플레이션, 치솟는 국가부채 등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러시아 제재와 나토(NATO), EU 통합 같은 대외 현안들도 쌓여 있다. 이탈리아의 선택이 주변국에 미칠 연쇄적 파급 효과는 적잖을 것이다. 새 총리가 어떤 본색을 드러내느냐에 유럽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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