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회의실 이름을 ‘밴플리트홀’로 변경… “6·25 참전한 장군 父子의 헌신 기억”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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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8군사령관으로 6·25 참전
중공군 공세 꺾고 전선 북상시켜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에도 기여
아들도 자원해 폭격기 몰다 실종

6·25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한국에서 60번째 생일을 맞은 아버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오른쪽)을 밴플리트 2세 대위가 축하해주고 있다. 조 맥크리스천 페이스북 캡처
6·25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한국에서 60번째 생일을 맞은 아버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오른쪽)을 밴플리트 2세 대위가 축하해주고 있다. 조 맥크리스천 페이스북 캡처
국가보훈처가 19일 정부세종청사 내 보훈처 건물 5층 회의실 명칭을 ‘밴플리트홀’로 변경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붙인 ‘평화실’이란 명칭을 내리고 6·25전쟁에 미8군사령관으로 참전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1892∼1992)의 이름을 따서 바꾼 것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날 밴플리트홀에서 열린 명칭 변경 행사에서 밴플리트 장군 부자의 모습이 담긴 액자를 회의실 벽에 부착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유엔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겠다”고 강조했다.

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11일 6·25전쟁에 참전해 중공군 공세를 꺾고 38도선 북쪽으로 전선을 북상시킨 명장으로 꼽힌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직후 승산이 없으니 일본 도쿄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를 듣고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와 함께하기 싫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육군사관학교 설립에도 기여했고 전역 후에도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설립해 한미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1960년 육사 교정에 밴플리트 동상이 세워졌고 많은 군인들이 그를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그의 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2세도 6·25전쟁에 자원해 B-26 폭격기 조종사(미 공군 대위)로 활약하다 1952년 4월 4일, 북한의 순천 지역(해주 부근)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대공포를 맞고 실종됐다. 아들을 찾는 수색이 시작됐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내 자식을 찾는 일로 다른 장병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며 수색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참모들은 그가 아들이 실종된 지역의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회고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19일 정부세종청사 내 보훈처 건물 5층 회의실 앞에 밴플리트홀 현판과 기념 액자를 게시하는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19일 정부세종청사 내 보훈처 건물 5층 회의실 앞에 밴플리트홀 현판과 기념 액자를 게시하는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박 처장은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회의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유엔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을 통해 한미동맹과 보훈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보훈처 회의실#밴플리트홀#美8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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