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 거식증과 가스라이팅?”…‘벽돌책’ 재출간에도 인기 몰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4일 11시 04분


코멘트

‘다락방의 미친 여자’ 등 인기

‘다락방의 미친 여자’(북하우스)·‘여성 작가 클래식’ 시리즈 ‘오만과 편견’(앤의 서재)
“40여 년 전에 정말 거식증과 가스라이팅(gaslighting·상대를 세뇌시켜 지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단 말인가?”

캐나다 문학연구가 리사 아피냐네시는 7일 국내에 재출간된 문학비평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북하우스) 서문에 이렇게 썼다. 1979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이 최근 독자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다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리사는 “아무도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삶을 한 권의 방대한 책에 담은 적이 없었다”며 “이 책은 ‘이류’로 취급됐던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의 메리 셸리(1797~1851),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1816~1855),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1818~1848) 등 19세기에 주로 활동한 영미권 여성 작가의 일생과 작품을 해설한 고전이다. 국내엔 2009년 출간됐다 절판됐지만 최근 해외 여성 작가들의 삶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늘며 재출간했다. 한때 중고 책 가격이 20만 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1168쪽에 이르는 ‘벽돌책’이지만 온라인 서점 알라딘 9월 첫주 종합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구매자의 62.8%가 20, 30대 여성이다. 허정은 북하우스 기획편집부 팀장은 “출간 1주일 만에 4000부가 소진돼 추가 제작에 나섰다”며 “예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나 그들의 삶을 조명한 책들이 주목받고 있다. 올 3월부터 시작된 ‘여성 작가 클래식’(앤의 서재) 시리즈는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장편소설 ‘오만과 편견’ 등 여성 작가들의 유명 작품을 재출간해 화제를 끌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와 비타 색빌웨스트(1892~1962)가 주고받은 편지를 선별해 묶어 지난달 20일 펴낸 서간집 ‘나의 비타, 나의 버지니아’(큐큐)처럼 여성 작가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책도 인기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열림원)·‘코펜하겐 삼부작’(을유문화사)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던 여성 작가들을 다룬 책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열림원) 시리즈는 쥬느비에브 브리삭(71) 등 국내에선 생소했던 프랑스 현대 여성 소설가들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0일 출간된 덴마크 시인 토베 디틀레우센(1917~1978)의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을유문화사)처럼 유럽에서도 최근 발굴된 작품을 소개하는 책도 여럿이다.

20, 30대 여성들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해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찾는 경향은 앞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김경민 을유문화사 편집장은 “기존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지 않은 독특한 작가들의 작품을 찾는 경향이 짙어진 만큼 출판사들도 시각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무거운 비평서부터 가벼운 에세이까지 다양한 책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해외 여성 작가들이 소개될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