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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조근조근 들려주는 식물과의 연애담[책의 향기]

입력 2022-07-30 03:00업데이트 2022-07-3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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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록 목록/허태임 지음/292쪽·1만7800원·김영사
참 아름다운 책이다.

겉보기에 그렇단 얘기는 아니다. 수수한 표지가 맘에 들긴 해도, 펼쳐야 절경이 펼쳐진다. 빼곡히 자리한 식물 사진도 근사하지만, 글이 너무너무 좋다.

솔직히 기대는 크지 않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박사님의 ‘과학에세이’인지라 선입견이 좀 컸다. 아우, 어려운 용어들에 뺨 맞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근래에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 얼마 만인가. 살짝 부풀려서, 저자가 존경한다는 세계적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1933∼2015)의 글을 처음 접한 기분마저 들었다.

일단 과학자라는 분이 우리말을 너무 예쁘게 쓴다. “눈을 치우다 말고, 남도 날씨 소식에 귀가 왕팽나무 겨울눈처럼 쫑긋 선다.” “(몇 해를 강원도 마을에서 보내면서) 산나물을 알아보는 나의 눈높이는 그들이 사는 위도만큼이나 조금 높아진 것 같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문장 하나를 다듬는 솜씨가, 깊은 산간에 숨은 희귀종 식물 고르듯 세밀하고 적확하다.

그렇다고 자칫 감상적이지도 않다. 국내외 식물에 얽힌 얘기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낙지다리’와 ‘쇠무릎’(실제로 비슷하게 생겼다)이란 식물이 이리도 친숙하게 다가올 줄이야. 서양 클래식 음악이나 동양 고전 서적과 식물에 얽힌 배경들도 흥미진진. 이 책을 읽으며 딱 하나 든 걱정은, 이리 잘 쓰면 다음 책 쓸 때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오지랖이었다.

저자를 통해 과학자란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다. 죄송하게도 살짝 외골수 이미지가 없지 않은데, 어쩌면 그들은 아주 깊고 오랜 연애에 빠진 이들이 아닐까.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동력을 얻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다”란 말이 두고두고 와닿는다. 그들의 사랑에 오래도록 행운이 깃들길.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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