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인모,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12월부터 이 순간만 바라보고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0일 0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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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우승은 최초

“인모니니에서 인모리우스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가 29일(현지시각) 핀란드 헬싱키에서 폐막한 제12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우승은 처음이다.

양인모는 2015년 이탈리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인모니니’라는 애칭으로 불려왔다. 그는 위촉곡을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현대 작품 최고해석상도 받았다. 2위는 미국의 네이선 멜처, 3위는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우도비첸코가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당초 예정된 2020년보다 2년 늦게 열렸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 연주자들의 참가가 배제되었다.

이번 수상으로 양인모는 1위 상금 3만 유로(약 3760만 원)와 현대 작품 최고해석상 상금 2000 유로(약 250만원)를 받는다. 부상으로는 이 콩쿠르 의장인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와 바이올리니스트 페카 쿠시스토의 멘토링 및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협연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영국 J&A 베어사가 제공하는 과다니니 바이올린 임대 혜택도 받는다.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는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5년 시작되었다. 소련의 빅토리아 뮬로바(1980년), 레오니다스 카바코스(1985년), 세르겡 하차투랸(2000년) 등의 유명 연주자를 우승자로 배출했다. 한국인으로는 신지아가 2005년 공동 3위에 올랐으며 지난 대회인 2015년에는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텔 리가 우승했다.

이번 대회의 결선은 27~29일 3일 동안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열렸으며 6명의 결선 진출자는 지정 결선곡인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포함한 협주곡 두 곡을 연주했다. 양인모는 27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카를 닐센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29일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결선 마지막 날인 29일에는 양인모의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비롯한 네 명의 연주가 열렸다. 양인모는 북유럽 대자연의 우수가 가득한 대곡을 특유의 또렷한 음색과 명확한 선율선으로 소화했다. 연주 직후 터진 격려의 함성부터 다른 연주자들이 받는 조용한 반응과 뚜렷이 대비되어 좋은 결과를 예감하게 했다.

다음은 양인모와의 일문일답.

―세계 주요 콩쿠르인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로서 다른 큰 콩쿠르에 도전했다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담도 컸을 듯하다. 어떤 마음으로 임했나.

“2020년 10월부터 베를린에서 살게 됐다. 그때 코로나19가 한창이었고, 청중들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내가 다니는 한스 아이슬러 음대의 안티에 바이타스 교수님이 이 콩쿠르를 권했다. 뭔가 새로운 목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시점이었고,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포함하는 프로그램에도 자신이 있었다. 12월에 참가를 결정한 뒤 하루 여섯 시간 씩 연습했다. 마음고생도 있었지만 즐거운 과정이었다.”

―어떤 마음고생이었나.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던 2015년 이전에는 거의 매년 콩쿠르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기성 연주가로서 활동하다가 다시 콩쿠르를 준비하려 하니 예전에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낯설게 느껴졌다. 평가를 받는 자리라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음악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준비했다. 참가자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었고, 내 10대 때가 회상되면서 ‘아, 저 어린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구나’라는 점이 처음으로 신경쓰였다.”

―시기적으로 적절했다고 했지만, 4월 29일부터 프랑스 메스 국립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다섯 차례나 생상스의 협주곡 3번을 협연하는 등 연주 일정이 많았는데.


“생상스 협주곡 협연으로 무대에 서는 감(感)을 잃지 않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콩쿠르에 도움이 된다. 부산시향 상주음악가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4월에는 처음으로 코른골트의 협주곡을 익혀 공연하기도 했지만 남들보다 열심히 모든 걸 준비해 극복하려 했다. 일정과 계획을 꼼꼼히 세워두는 게 중요했다.”

―콩쿠르마다 색깔과 저마다의 어려운 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 콩쿠르는 어땠나.

“시벨리우스 콩쿠르가 가진 취향이랄까,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우승자들과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다른 콩쿠르보다 더 정확하게 음악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대곡을 2차 예선에서 연주하는데 3월이 되어서 야 악보를 받았다. 준비 기간이 짧고 곡 자체도 굉장히 어려워 힘들었다. 현대 작곡가 마그누스 린드베리가 이 콩쿠르의 위촉을 받아 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곡으로 현대작품 최고해석상을 받았다.

“린드베리의 곡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연주 실황을 객석에서 감상한 적도 있어서 그의 작품을 내 식으로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

―결선 마지막 날도 그랬고, 인터넷으로 콩쿠르를 지켜본 누리꾼들도 매번 청중의 호응이 다른 연주가들과 달랐다고 이야기한다.

“핀란드에서 연주하기는 처음이어서 청중들의 성격이나 색깔이 궁금했다. 청중 몇 명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핀란드의 감성에 맞는 연주를 해주어 고맙다’라는 반응이었다. 한국인과 핀란드인의 감성에 공통된 점이 있다고 느꼈다.”

―27일 연주한 닐센의 협주곡도 다른 연주가들을 완전히 빛바래게 했다는 평이 나온다.

“처음 연주해보는 곡이었다. 유럽에서도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이지만 결선 과제곡으로 나왔다는 것은 오케스트라가 이 곡에 익숙하다는 뜻으로 생각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리허설부터 매우 순조로웠고 지휘자(안나마리아 헬싱)와 악단이 잘 받쳐줬다. 29일 연주(지휘 디마 슬로보데니우크)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시벨리우스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나왔다. 그 소리에 탄력을 받아서 더 좋은 연주가 된 듯하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김한 클라리넷 부수석이 29일 시벨리우스 협연에 참여한 모습이 보였다.

“친한 사이다. 얼마 전 메시앙의 사중주도 함께 연주한 일이 있고 며칠 전 이곳에서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가 반주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마음이 든든했다.”

―결선에 오른 다른 다섯 명 연주자 중 특히 신경 쓰이는 상대가 있었나.

“개성이 매우 뚜렷한 여섯 명이 결선에 올랐다. 이들의 연주를 보면서 경계심보다 다들 특별하구나, 저렇게 연주할 수도 있구나라는 점을 배웠다. 그게 콩쿠르의 좋은 점인데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에서는 어떤 점에 신경을 써서 연주했나.

“시벨리우스의 나라 핀란드에는 이번에 처음 왔다. 이 나라의 대자연을 느껴보려 혼자 숲속과 호숫가를 걸어보곤 했다. 시벨리우스가 자신을 ‘산 속의 유령’이라고 말했듯이 그의 음악은 대자연을 표현한 음악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잘 안 느껴진다. 예를 들자면 말러의 음악도 자연을 다루지만 말러의 음악에서는 자연 속에서도 인간이 중심에 있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자연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의 악보에는 매우 섬세하고 미묘한 강약 지시가 있는데 그것들이 바람과 같은 자연을 묘사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또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은 비르투오조(명인기)적 음악이 아니다. 기교적으로 어렵지만 기교적인 효과만을 위한 음악이 아니다. 오늘 연주를 하면서 내 자신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으로 ‘인모니니’라는 애칭을 얻었는데 이제 다른 작곡가의 이름과 결부돼 인식되게 되었다.


“인모니니라는 별명은 마음에 든다. 하지만 파가니니만 잘하기는 싫다. 많은 다른 작곡가들을 탐험하고 폭넓은 레퍼토리로 인정받는 연주가가 되고 싶다. 시벨리우스는 아직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으며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지만 이제는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1차 예선에서 파가니니나 에른스트의 카프리스 곡을 고를 수 있었는데 굳이 알려지지 않은 에른스트의 곡을 선택했다. 파가니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파가니니를 지우려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내가 이 콩쿠르 참가자 중에서 나이가 많은 편 아닌가. 한층 도전적인 선곡을 해야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에른스트를 연주한 건 만족스러웠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못잖게 기교적으로도 어렵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가하게 된 점도 좋았다.”

―중요한 성취를 또 이룬 셈인데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은 게 행복하고, 당장은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12월부터 이 순간만을 바라보고 왔기 때문에 혼자 쉬면서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쁘고, 연주 하나하나에 매진하며 살면 행복할 것 같다. 콩쿠르에 또 도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유럽에서 더 많은 연주 기회가 열릴 것이고. 좋은 음악적 파트너들을 만나고 더 깊이 음악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긴 밤 산책을 하고 푹 잔 뒤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1차 예선부터 함께 한 49명 참가자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받은 상은 그들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가 시벨리우스의 작품과 다른 음악들을 함께 준비해서 나눈 데에 콩쿠르의 참다운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양인모는 2008년 금호영재콘서트로 연주계에 데뷔했으며 2014년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의 영예를 안았다.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덴마크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으며 2018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활동했다.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로 파가니니 ‘24개 카프리스’ 전곡과 ‘현의 유전학’ 앨범을 발매했다.

헬싱키(핀란드)=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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