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장르 경계 넘어 손 내미는 다섯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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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우다영 등 지음/288쪽·1만3000원·허블

스마트폰 게임 ‘볼볼볼’의 규칙은 간단하다. 화면에서 수많은 볼이 쏟아진다. 게이머는 볼들을 무작위로 터치한다. 볼의 생김새는 모두 같다. 하지만 이들은 터치하면 비눗방울처럼 터지며 사라지는 ‘행운의 볼’과 하늘에서 물벼락과 불벼락이 쏟아지는 ‘불운의 볼’로 나뉜다. 어떤 볼을 선택할지, 확률은 5 대 5.

29세 여성 효주는 이 게임에서 1만6000회 연속으로 ‘행운의 볼’만 터치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효주를 찾아온 남성은 효주가 ‘예지’ 능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효주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예지자들을 만나고 생각이 바뀐다. 효주는 남성을 따라 미래의 재앙을 막는 인공지능(AI) 개발에 참여한다. 과연 효주는 세상의 종말을 막을 수 있을까.

소설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을 쓴 작가 5명은 모두 MZ세대다. 김학제 허블 편집팀장은 “SF에 관심이 있고 적극적인 작가를 모으다 보니 젊은 작가를 주로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블 제공
소설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을 쓴 작가 5명은 모두 MZ세대다. 김학제 허블 편집팀장은 “SF에 관심이 있고 적극적인 작가를 모으다 보니 젊은 작가를 주로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블 제공
우다영은 중편 ‘긴 예지’에서 초자연적 현상으로만 여겨졌던 예지 개념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어떤 개는 주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에 위험을 감지해 주인을 눕히고, 철새들이 악천후를 예상하고 미리 움직이듯 인간이 기술을 만나면 앞날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 예지를 과학계 화두인 AI로 다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은 공상과학(SF) 소설 5편을 모은 중·단편 소설집이다. 작가 5명이 아직 발표하지 않은 장편소설의 세계관을 공유하되 담긴 이야기는 다른 ‘프리퀄’이다. 작가들 모두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는 점에 눈길이 간다. 젊은 작가들이 모여선지 기존 SF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조예은의 단편 ‘돌아오는 호수에서’는 신비로운 호수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연구자들이 호수에 버린 폐기물 때문에 생겨난 괴물이 마을을 습격하는 모습은 윤리가 사라진 과학이 만든 참혹함을 상상하게 한다. 문보영의 단편 ‘슬프지 않은 기억칩’은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지 않는 AI 로봇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음대로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을 지우는 인간이 AI 로봇을 상대로 기억을 지우는 일은 합당한가.


심너울의 단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지구에 운석이 충돌한 뒤 퍼진 바이러스로 인해 막강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을 활용해 대중을 지배하려는 지도자를 보여 준다. 과연 인간은 새로운 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박서련의 단편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은 우주 관광이 상용화된 미래, 외계인에게 호감을 지니게 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엔 국경도 나이도 없다지만 행성과 종족까지 초월할 수 있을까.

저자에 젊은작가상(박서련), 김수영문학상(문보영)을 수상한 순수문학 작가들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우다영 문보영은 SF 소설을 쓰는 게 처음이라고 한다.

허블 출판사는 이 소설집을 시작으로 SF가 장르문학이라는 틀을 깨는 ‘초월 시리즈’를 시작한다. SF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지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우다영#볼볼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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