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상 전 배아 유전체 진단으로 암 위험성 판독… 윤리적 논쟁은 여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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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데이터로 배아 유전체 재구축
관상동맥 질환-당뇨 등 12개 질환, 위험 요인 예측 결과 정확도 99%
일각선 의료 서비스 접근 편향성…임신중절 남용 등 윤리 문제 제기

미국 생명공학기업 마이옴이 체외수정으로 만들어진 배아의 유전 질환 위험을 99% 정확도로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가 유럽 혈통의 사람에게만 적합하다는 한계와 오남용 가능성이 지적되며 과학계 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마이옴이 체외수정으로 만들어진 배아의 유전 질환 위험을 99% 정확도로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가 유럽 혈통의 사람에게만 적합하다는 한계와 오남용 가능성이 지적되며 과학계 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이 체외수정(IVF)으로 만들어진 배아에서 심장질환이나 유방암 등 유전자 영향을 받는 질환의 위험을 99%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발표하면서 과학계에서 윤리 논쟁이 촉발됐다. 부모의 유전체 정보를 토대로 배아의 유전체를 정확히 읽어내면서 성인 대상의 유전자로 인한 질병 위험 분석을 배아에도 적용하는 게 윤리적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 배아 유전체 해독으로 질환 예측도 가능해져


미국 생명공학기업 마이옴의 아카시 쿠마르 최고의료책임자(CMO) 연구팀은 수정 후 며칠이 지난 배아의 유전체 정보를 정확히 해독해 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체외수정으로 만들어진 배아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PGT)가 가능하다. 하지만 유전체를 정확히 알아내기 힘들어 염색체 이상이나 특정 유전질환, 유산 가능성 정도만 확인한다. 배아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유전물질을 아주 조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부모의 유전체를 기본 데이터로 배아의 유전체를 재구축해 정확도를 높였다. 부모 10쌍의 유전체를 모두 분석하고 이들에게서 나온 배아 110개의 유전체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어떤 염색체를 전달했는지 확인했다. 이후 배아를 착상시켜 태어난 신생아 유전체와 착상 전 배아를 비교해 보니 수정 5일이 지난 배아 유전체와 98%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더 나아가 유전체 정보로 질환 위험을 파악하는 ‘다유전자 위험 점수 모델’을 배아에 적용했다. 이를테면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브라카(BRCA) 유전자 돌연변이와 같은 위험을 찾는 것이다. 관상동맥 질환, 당뇨병 등 12개 질환의 다유전자 위험 점수를 계산한 결과 배아 때 예측치가 신생아와 99% 일치했다.

쿠마르 CMO는 “이번에 개발한 배아 유전체 재구성 기술로 체외수정 시술을 받는 사람들의 자손이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새로운 기술인 만큼 논란과 도전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 유럽의 백인 제외하면 정확도 떨어지고 불평등 문제도 촉발


미국의 생명윤리연구를 위한 비영리 연구기관인 헤이스팅스센터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서 별도 사설을 통해 다유전자 위험 점수 모델이 유럽의 백인을 제외하고 정확도가 매우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전자 연구가 유럽 혈통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착상 전 유전자 검사가 기존의 유전자 연구를 기반으로 한 만큼 유색인종에 대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등 공동연구팀이 2017년 진행한 연구에서도 아프리카인이 유럽인보다 키가 작다는 잘못된 분석 결과가 도출된 적이 있다.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연구가 추가로 이뤄지면 보완될 수도 있지만, 이미 다유전자 위험 점수 모델이 미국과 일본 등 여러 국가의 소비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이스팅스센터 연구진은 누구나 착상 전 검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불평등도 큰 문제로 꼽았다. 연구진은 사설에서 “착상 전 유전자 검사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많은 질병이 신체활동이나 식이요법 등 여러 환경적·사회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착상 전 유전자 검사만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난임전문병원인 인간생식센터 연구진은 또 다른 사설을 통해 유전자 검사의 기본 가정 자체가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배아가 착상 전 검사에서 염색체 수가 정상보다 많거나 적은 것으로 나타나 유산 가능성이 높아도 성장하면서 염색체 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생식센터 연구진은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세포생물학’에 “착상 전 유전자 검사에서 염색체 수가 비정상으로 나타난 배아도 임신율이 18%, 생존율이 12%로 평균적인 체외수정 결과와 유사하게 나타났다”며 “배아가 성장하면서 염색체 수가 비정상적인 세포가 제거됐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배아와 태아 유전자 검사 관련 정책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배아 또는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별도로 규제하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임신 초기 선별검사 후 고위험군 임신부를 대상으로만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반면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모든 임신부에게 배아 또는 태아 유전자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현행법은 착상 전 또는 산전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유전질환을 질환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가 인공임신 또는 중절수술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성감별 등의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전문가들은 심각한 유전질환에 대한 원인유전자가 명확히 밝혀진 경우에는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착상 전 배아#유전체 진단#질환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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