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슬기로운 행복 생활[동아시론/서은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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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결정하는 건 사회적 경험의 양과 질
관계의 넓이 아닌 깊이에 주력할 때
과한 불안은 정신 건강 갉아먹고 불신 키워
일상에서의 행복 채굴에 전념해야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새벽안개처럼 불쑥 찾아온 코로나는 새해 아침에도 걷히지 않고 있다. 이 작은 바이러스에 2년 넘게 끌려다니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을 내려놓게 된다. 코로나19가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은 수시로 목격한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코로나 기간 중 세계인의 정서 변화를 추적한 국제 자료들을 보면 불안 수준은 코로나 전 대비 약간 올라갔다. 불안이란 감정은 우리 뇌가 발동하는 경보음이다. 위험이 있으니 평소보다 긴장하고 조심하라는 메시지다.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적절한 신호다. 위험이 지나면 이 한시적 경보는 꺼질 것이다.

우리의 행복감은 어떨까? 지금은 그냥 인내하는 시간이고, 행복은 코로나 이후로 유보해야 하는 것일까? 군 제대를 목전에 둔 한국 남자들이 모두 가졌던 착각이 하나 있다. 지금 힘들지만 제대하면 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그러나 제대한 모든 남자들은 곧 깨닫는다. 군대의 아침 점호가 제대 후 새벽 출근으로 바뀌는 피상적 변화만 있다는 것을. 우리의 희로애락은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발생한다. 구체적 원인만 다를 뿐이다. 행복은 큰 사건 하나로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 경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제대의 흥분이 가시면 장기적 행복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제대를 앞둔 마음처럼 우리는 코로나 종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많은 불편들이 없어지고 행복해지리라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불안과는 달리 즐거움 수준은 코로나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여러 자료들이 보여준다. 이 말은 코로나 종식이 눈에 띄는 행복 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코로나 이후로 유보하는 미래 고민이 아닌 현재 프로젝트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슬기로운 행복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 행복을 가장 크게 결정하는 것은 사람과의 사회적 경험의 양과 질이다. 최근 논문들에 의하면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인간은 신체적 고통이나 추위를 덜 느끼고, 높은 경사도 완만하다고 지각한다. 사람에게 사람은 이토록 절대적인데, 코로나가 이 부분에 다소 어려움을 준다.

다행인 것은, 여러 종류의 사회적 만남 중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다수와 잠깐 만나는 큰 모임)이 현재 제일 큰 제약을 받고 있다. 행복에 더 직접적 영향을 주는 친밀한 관계(가족, 절친 등)는 거리 두기 제약을 덜 받는다. 대면 만남이 어렵다면 우리에겐 카톡과 화상통화가 있지 않은가! 불안의 커튼을 치고 모든 관계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좋지 않다. 단, 수백 명의 사람과 지나치게 나누는 익명의 사회적 교류(가령 인스타그램)는 공허함을 남기고, 행복감도 떨어뜨린다고 연구들은 밝힌다. 지금은 관계의 넓이가 아닌 깊이에 좀 더 주력할 때다. 지금도 행복의 중요 양분은 사회적 경험임을 명심하자.

행복과 관련된 코로나 특수 요인도 있다. 위험을 감지하면 마음은 움츠린다. 현존 인류는 지구의 수많은 위협을 넘긴 생존자들이다. 뇌 덕분인데, 이 녀석은 우리의 행복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생존과 성공적 재생산이 초미의 관심사다. 그래서 위험에 대해 아주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연기가 무조건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뇌는 이 둘을 거의 동일시한다. 이것을 뇌의 ‘연기 감지 원리(smoke detection principal)’라고 한다. 위험에 대한 과장된 반응은 생존을 도왔기 때문이다. 사자를 관망하던 사슴보다 바람 소리에도 도망쳤던 녀석이 생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발동된 뇌의 경계 시스템은 지금 다소 ‘과한’ 수준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조심하되, 불필요한 불안과 긴장감은 조금 다스릴 필요가 있다. 구체적 제안 하나는 불안을 가중시키는 정보나 자극에 스스로를 덜 노출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9·11테러 후 이 사건과 관련된 뉴스와 정보를 덜 찾았던 사람일수록 트라우마 회복이 빨랐다. 누구도 경미하게 생각하지 않는 현재 상황을 수시로 상기시킬 필요는 없다. 불안은 필요악이다. 위험 시 보호도 하지만, 과한 불안은 정신 건강을 갉아먹고 타인에 대한 불신을 높이며 이기적 행동을 조장한다.

2022년은 코로나의 마지막 해로 기록되길 바란다. 새해 출발선에서 코로나의 종식은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일상에서의 행복 채굴에 전념하자. 지금 행복하지 못한 자는 내일도 행복하기 어렵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새해#코로나#행복#슬기로운 행복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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