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시인이 미발표 산문 낭독하면 30대 싱어송라이터가 노래로 화답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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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최고은 독특한 합작
우정 주제 ‘뮤키디오’ 앨범 내
“우리, 미지근하게 오래 보자”

시인 김소연 씨(위)는 “우정이란 주제에 대한 최고은 씨(아래)의 고민에 공감해 참여했다. 장르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쾌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누구도
시인 김소연 씨(위)는 “우정이란 주제에 대한 최고은 씨(아래)의 고민에 공감해 참여했다. 장르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쾌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누구도
앨범을 재생하면 ‘삐약삐약’ 아침 새소리가 스테레오로 청자를 반긴다. 이어지는 차분한 목소리…. 에세이의 첫 장처럼 좋아하는 하루 풍경을 조곤조곤 나열한다. 화자는 커피콩을 갈고 공원 벤치에 누워 종이 냄새가 나는 새 책으로 얼굴을 덮는다. 자전거 타고 안경점에 다녀온다.

9분여의 낭독이 끝나면 문득 투명한 통기타 분산화음이 스피커를 울리고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이번엔 음표를 타고 노래한다.

시인 김소연 씨(55)와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씨(38)가 독특한 합작 앨범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Live)’를 내놨다. 김 씨는 자신의 미발표 산문을 직접 낭독하고 최 씨는 노래로 화답했다. 산문과 노래의 신선한 대구(對句)가 38분여 동안 펼쳐지는 스토리 앨범이다. 산문, 노래, 영상을 음반에 함께 담았다. 자칭 ‘뮤키디오’(Muookideo·음악+책+비디오)를 표방한 앨범. 주제는 ‘friendhood’로 영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최 씨의 신조어다. 한국어로 옮기면 ‘우정스러움’쯤 된다.

“우정에 대한 가사를 쓰면 쓸수록 그게 대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김)소연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죠.”(최고은)

몇 년 전 예술인 모임에서 만나 친분을 다진 두 사람의 독특한 합작이 시작됐다. 김 씨는 틈틈이 써둔 산문 수십 편을 최 씨에게 전달했다. 최 씨는 “마치 노래에 어울리는 드립 커피 향기를 음미하며 고르듯 내 가사와 연결되는 산문을 골랐다”고 말했다.

음반은 향기롭다. 말 그대로 ‘우정스러움’에 어울리는 향기도 담았다. 최 씨와 일행은 서울 중구 방산시장을 찾아 직접 조향을 했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향수의 이름도 ‘friendhood’. 이 향수를 묻힌 책갈피를 음반마다 꽂아뒀다.

앨범 속 화자는 친구와 첫 캠핑을 가 밤새 이야기를 나누거나, 천변을 함께 걸으며 친구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준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극적인 사건도, 반전도 없다. 그러나 하이라이트 트랙인 ‘축제’에서는 음반 내내 분리돼 있던 낭독과 노래가 합쳐지며 형언하기 힘든 클라이맥스가 키 높여 다가온다.

‘우리는 자주 이상한 함정에 빠진다. … 그런 순간은 바깥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아주 조금 확장될 때, 그것이 작은 축제 아닐까요. 제가 찾은 우정스러움의 결론은 ‘우리, 미지근하게 오래 보자’입니다. 소연 언니와도 그러고 싶어요.”(최고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소연#최고은#뮤키디오#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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