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감당 못해… “선진국도 개도국도 굶는 사람 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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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가격지수 1년 전보다 30%↑, “난방비 내려면 식료품비 줄여야”
英무료급식소 중산층 이용 늘어… 공급망 대란-식료품 가격 급등에
美, 무료급식소 운영도 어려워져… 아시아, 이상기후로 곡물생산 차질
“쌀만 먹고 견뎌… 다른 방도가 없다”

영국 런던의 푸드뱅크 ‘험딩거스 수프’ 앞에서 무료 급식을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악화, 고조되는 물가상승 압력, 전 세계적 물류 대란 등으로 식량난이 가중되자 최근 영국에서는 교사 등도 푸드뱅크를 찾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CNN 화면 캡처
영국 런던의 푸드뱅크 ‘험딩거스 수프’ 앞에서 무료 급식을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악화, 고조되는 물가상승 압력, 전 세계적 물류 대란 등으로 식량난이 가중되자 최근 영국에서는 교사 등도 푸드뱅크를 찾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CNN 화면 캡처
영국 웨스트 런던 지역의 무료 급식소(푸드뱅크) ‘아빠의 집’은 9월 중순부터 음식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이전보다 70명가량 늘었다. 이전에는 저소득 빈민층을 중심으로 주당 300∼400명이 방문했지만 요즘에는 평범한 직장인들도 찾는다. ‘아빠의 집’ 창업자인 빌리 맥그래너핸은 CNN비즈니스에 “전혀 푸드뱅크를 이용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 1인 가구가 크게 늘었다”며 “전기료와 가스료 등이 치솟았기 때문에 앞으로 몇 달간은 이용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생필품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민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중남미, 인도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생활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난방을 하기 위해 끼니를 굶는 경우도 늘고 있다.

넉 달 전부터 아빠의 집을 찾았다는 마리 씨(63)는 올겨울 난방비가 걱정이다. 남편이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집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영국의 주요 난방 연료인 천연가스 가격이 연초 대비 400% 넘게 오르면서 생활비에 큰 압박을 주고 있다. 맥그래너핸은 “영국의 저소득층이 난방이냐 끼니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미국의 푸드뱅크들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등 연말 시즌을 앞두고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음식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나눠 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한 교회에서 무료 급식소 운영을 맡고 있는 제이슨 버티스타 씨는 AP통신에 “식료품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푸드뱅크를 이용하는 소니아 씨(45)는 “주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긴 하지만 우유나 닭고기 등이 너무 비싸서 충분치 않다”고 했다.

개발도상국의 사정은 더 힘들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셀리아 마투스 씨(41)는 네 자녀에게 음식을 해주고 나면 자신은 먹을 게 없어 굶은 채 잠이 든다. 최근 육류 등 식품 가격이 30%나 급등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요리를 위해 가스를 사면 음식을 살 수 없고, 음식을 사면 비누를 살 돈이 없다”며 울먹였다.

아시아는 이상 기후 등으로 양파, 양배추 같은 채소 가격이 급등했다. 인도 뉴델리에 사는 샨티 호로 씨(41)는 “우린 (아무런 반찬 없이) 쌀만 먹고 견딘다. 가끔은 빵에 설탕만 먹는다”며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이달 4일 발표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년 전보다 30% 이상 오르며 2011년 7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곳곳에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각국 소비자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공급망 대란의 여파 등으로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아 서민들의 생활고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10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6.2% 급등해 3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10월 생산자물가가 1996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 폭인 13.5% 급등한 것도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선진국 물가#개도국 물가#공급망 대란#식료품 가격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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