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막노동하며 버틴 ‘스노보드 맏형’ 김상겸 “선수 포기 못했던 이유는…”

강동웅 기자 입력 2021-10-19 15:47수정 2021-10-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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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탑(Top)이다. 불안해하지 말자.”

19일 한국 스노보드 국가대표팀 ‘맏형’ 김상겸(32·하이원리조트)이 강원도 평창 소속팀 훈련 전 스스로에게 되뇌인 혼잣말이다. 김상겸은 같은 말을 중요한 경기 출발선에서도 내뱉는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 멘탈 관리법은 성적 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올 3월 열린 알파인 스노보드 슬로베니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배추보이’ 이상호가 세웠던 종전 역대 최고(2017년·5위) 기록을 넘어 4위에 올랐다.

스노보드 국가대표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김상겸이지만, 기량은 갈수록 만개하고 있다. 2년 전 국내 첫 스노보드 실업팀이 창설되고 여기 입단하면서 생계 문제에서 자유로워지자 훈련에 집중할 시간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2022 베이징 올림픽 앞두고 스노우보드 국가대표팀 맏형 김상겸 선수 인터뷰
김상겸은 초등학교 1~2학년 시절 천식으로 고생하던 자칭 ‘허약한 아이’였다. 천식이 심해 2주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보다못한 부모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권유하면서 초3부터 육상을 시작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될 즈음엔 키 178cm의 덩치 있는 학생 선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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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때 학교 내 스노보드부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보드를 타게 됐다. 어려서부터 육상 80m와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힘을 쏟아내는 운동을 해왔던터라 30~40초에 승부를 결정짓는 스노보드에서 금방 탁월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11년 한체대를 졸업한 김상겸은 곧바로 일용직에 뛰어들었다. 실업팀이 없어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그는 “시즌이 끝나는 3월과 대표팀 선발전을 치르는 5월 사이의 4월 휴식기 중 약 20일은 막노동을 했다. 훈련 기간에도 주말 중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뛰었다”고 전했다.

현 소속팀 입단 후 그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온전히 훈련에만 몰입할 수 있어서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2년 전부터는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주량이 4병도 넘는다는 그는 평소 훈련이 끝나면 주말간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돌아오면 몸무게 5kg가 쪄있을 때도 있었다.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그의 시간표도 바빠졌다. 매일 오전 6시반에 일어나 5~6시간을 훈련에 매진한다. 저녁에는 2시간가량 비디오 분석도 하고 있다. 최근 공부한 운동선수 연구 논문에 따라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꼭 10시간의 수면 시간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그는 26일 러시아 반노예로 출국한다. 올림픽 전까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 7개 월드컵에 출전한다. 19일 현재 올림픽 랭킹 포인트 410점으로 세계랭킹 27위에 올라있는 그는 매 대회 꾸준히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면 베이징행이 유력하다.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랭킹 상위 32명만이 출전할 수 있다.

김상겸은 “난 느릴지 몰라도 포기하지는 않는 선수”라며 “그간 차근차근 성적을 끌어올려왔다. 소치, 평창에 이은 인생 세 번째 올림픽인 베이징에서 목표는 무조건 포디움(시상대)에 오르는 것이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느리지만 성실한 김상겸의 때가 베이징에서 꽃 피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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