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성호]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금기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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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33년 된 최저임금제 변화 필요
‘공약’과 별개로 차등 적용 등 논의해야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최근 대선 주자들이 잇달아 최저임금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저임금 인상도 지역별,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전향적 검토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7월 “일자리를 빼앗은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표현이 문제가 됐지만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킨 것이다.

중도 하차했지만 윤희숙 의원도 공약으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언급했다. 조금 더 과거로 가보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3년 전 현직 때 비슷하게 말했다. 2018년 10월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김 부총리는 지역별 차등 적용 방안을 관련 부처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최저임금제 개선을 언급한 건 모두 야권 인사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주장이 나올 때마다 여권의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최저임금제 취지를 훼손하고 지역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언급조차 하면 안 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일단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불법이 아니다. 최저임금법에는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렇게 심의하면 된다. 경영계도 이를 근거로 수년간 차등 적용을 주장했다. 하지만 번번이 똑같은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1988년 시행된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비, 노동생산성 등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문제는 이런 수치가 업종은 물론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동안 최저임금위가 손놓고 있던 건 아니다. 2017년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TF 판단은 차등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30년이나 이어진 제도를 고치면 혼란과 후유증은 당연하다. 만약 지역이든 업종이든 차등 적용했을 때 당장 차별 논란이 벌어질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는데 서울과 부산, 도시와 농촌에서 받는 돈이 달라지는 것이다. 잘나가는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그러니까 최저임금 영향이 없는 사업장은 상관없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가 문제다. 자칫 싸구려 업종, 싸구려 지역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낙인 효과’다.

그렇다고 영원히 논의조차 못할 정도로 차등 적용을 금기로 둬야 할지 의문이다. 차등 적용의 문제점은 일단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 그렇다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여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있는 것이다.

지난달 5일 새로운 최저임금이 고시됐다. 올해보단 5.1% 오른 9160원이다. 적용은 내년이지만 자영업자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격한 인상의 후유증을 경험한 탓이다.

33년 된 최저임금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차등 적용은 그중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불러올 혼란이 작지 않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의 언급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임기 내 1만 원으로 인상’처럼 당선만 되면 모든 걸 바꿔놓겠다는 식의 공약은 곤란하다. 최저임금위원장의 말대로 ‘경제와 노동시장 여건에 맞게’ 결정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를 위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최저임금#차등 적용#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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