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원룸서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폭염…취약 가정의 여름

  • 뉴스1
  • 입력 2021년 8월 2일 0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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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화씨(51·여)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한 원룸의 창문.의 절반 정도가 담벼락에 막혀 있다. © 뉴스1
이연화씨(51·여)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한 원룸의 창문.의 절반 정도가 담벼락에 막혀 있다. © 뉴스1
“애가 온몸에 땀띠가 났어요. 집에 선풍기 한 대로 버티고 있는데 엄마가 아프니까 양보를 해요.”

경기도의 한 원룸에서 초등학교 5학년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이연화씨(51·여)는 최근 이어진 폭염에도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식혀야 했다. 모녀가 살고 있는 보증금 40만원에 월세 23만원짜리 원룸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고장이 난 상태다.

원룸은 말은 1층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반지하로, 창문을 열어도 창문의 반은 시멘트벽이 가리고 있다. 그나마 이 창문을 열려고 해도 밖을 지나는 행인들이 여자들만 사는 방안을 들여다볼까 봐 걱정이 앞선다.

창문을 열어두면 날아들어 오는 모기들도 문제였다. 제일 독한 모기향을 골라 피워도 모기가 계속 들어왔다. 모기가 물린 곳을 긁어 상처가 가득한 딸 아이의 발을 바라보면서 연화씨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음이 아팠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던 지난달 29일 연화씨는 뉴스1과 통화에서 더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황을 전하면서 연이어 한숨을 쉬었다. 아픈 엄마에게 그나마 한 대 있는 선풍기를 양보한 초등학생 딸의 몸에는 땀띠가 났다. 엄마인 연화씨가 해줄 수 있는 건 찬물로 아이의 몸을 닦아주는 것뿐이었다.

올여름 들어 지속되는 폭염은 연화씨네를 비롯해 저소득층 가정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냉방장치를 돌릴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은 연일 상승하는 온도에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여름철 실내에서 냉방장치를 너무 많이 틀어 냉방병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요즘에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더위를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가구는 여전히 많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대한전기협회 주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저소득으로 인해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사용하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가구’가 국내에 약 127만 가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에어컨 보급도 확대되고는 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저소득가구 에너지소비실태와 에너지빈곤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저소득 가구의 에어컨 보급률은 가구당 0.18대로 전체 가구 평균인 가구당 0.89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연화씨네도 이런 에너지 빈곤 가구 중 하나다. 연화씨는 현재 간경화와 갑상선 질환 악화로 일을 할 수 없어 따로 수입이 없다. 교육·주거급여를 받아 생활하는 수급자 입장에서 에어컨을 수리하거나 새로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수리를 해도 수리비와 전기료 등이 부담이다.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연화씨는 “사실 집 안보다 밖이 더 시원한 것 같아요”라면서도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아이 혼자만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모녀는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선풍기 한 대로 불볕더위를 견딘다고 했다.

한편, 서울에서 살던 연화씨와 딸은 지난 2019년 연화씨가 남편과 이혼하면서 경기도 외곽까지 밀려났다. 연화씨는 남편의 외도를 견디지 못해 이혼을 했지만 막상 갈 곳이 없어 딸과 함께 고시원 생활을 하다가 결국 월세가 그나마 싼 현재의 원룸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생계의 어려움에 더해 주변에 도움을 주던 손길도 끊어지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연화씨는 전기와 수도마저 끊어지자 딸과 함께 목숨을 끊으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죽기 싫어 엄마, 그럼 다음 날 죽자”는 딸의 애원이 연화씨의 마음을 돌렸다.

도움이 청할 곳이 없었던 연화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살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를 통해서야 연화씨는 자신과 같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연화씨는 이후 동사무소를 통해 긴급생활비 지원과 교육·주거급여를 받게됐고 최근에는 의료·생계급여도 함께 신청해 놓은 상태다. 최근 연화씨의 사정에 대해 알게 된 초록우산어린이재단도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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